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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Aug 15. 2024

흥! 칫! 뿡!

흥! 칫! 뿡!

둘째 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말이다.

말뿐 아니라 행동까지.

흥! (얼굴을 옆으로 빨리, 세게 돌리면서)

칫! (얼굴은 정면으로, 양 미간 사이를 잔뜩 찡그리면서)

뿡! (뒤돌아서서 엉덩이만 앞으로 쏙 내밀면서, 흡사 방귀 뀌듯이)


처음엔 화가 날 때만 약간 씩씩거리면서 했는데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아무 데나 한다.

웃으면서 할 때도 있어서 이 아이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인지, 장난이 치고 싶은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가끔은 자기가 하는 흥! 칫! 뿡! 을 동영상으로 찍어 달라고도 한다.

이 정도면 그냥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 좀 봐달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건가? 


"흥칫뿡야 흥칫뿡야 친구가 화났는데, 흥칫뿡야 흥칫뿡야 친구가 화났는데~~" 

가끔 이런 노래도 부른다. 혼자서 음을 만들어서.

들으면서 생각한다. 

도대체 저 노래의 의미는 뭘까? 

물어보면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란다.

친구가 화났는데 왜 재밌지? 가사를 좀 다르게 넣어서 부를 수 없나?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나 보다.

아니면 내가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짓고 있는지도.


자기감정에 충실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기쁘고 즐거우면 얼굴 한껏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보는 사람마저 미소 짓게 하고.

웃긴 일이 있으면 집이 떠나갈 만큼 깔깔거리면서 웃어서 나까지 덩달아 웃게 만들고.

슬프면 눈꼬리가 내려오면서 고개도 살짝 숙이고 눈물이 글썽글썽 거리는 얼굴로 울고.

화가 나면 다다다 다다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온몸으로 씩씩거림을 표현하고.

속상할 때는 어깨가 축 내려간 채 얼굴에 속상함을 한가득 표현하고.

아이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을 그래도 잘 표현하고 있구나! 느낀다.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숨기면 나중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니까.


내가 자랄 때는 자기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말라고 많이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아주 큰 감정을 제외하고는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

얼굴에 모든 감정이 드러나는데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힘들고 슬픈 감정은 더더욱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것임을 알기에 꼭꼭 숨겼다.

그렇게 숨겼던 감정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 폭탄처럼 터졌다.

조금씩 조금씩 내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감정이 이렇게 쌓일 줄 누가 알았나.

그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어른이 된 지금도 내 감정을 그래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씩 배운다.

건강하게 감정 표출하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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