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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Aug 17. 2024

초파리를 죽이면서 쾌감을 느끼는 나는 잔인한 인간인가?

날씨가 조금 따스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초파리.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언제, 어느 루트로 들어왔지? 궁금할 정도로 신기한 생물체다.

처음엔 한 마리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여러 마리가 거슬리게 날아다닌다.

아주 조그마한 몸으로 나를 놀리듯 날아다니는 것이 영 신경 쓰인다.

벌레 잡는 것을 싫어하기에 보통은 남편이나 두 아들에게 부탁하는데, 아무도 없을 때는 일회용 장갑 등을 끼고 잡는다.

그런데 초파리는 너무 빨라서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되기에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잡는다.

잡고 싶지만 재빨리 도망가버려서 실패하는 확률이 더 놓다.

기분이 상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 같다.

베란다에는 화분을, 거실에는 달팽이, 애플크랩, 소라게, 구피, 풍선몰리를 키우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난 초대한 적 없는데 한 마리씩 나타나고, 더구나 짝짓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경이 곤두선다.

알을 낳아서 집안 여기저기에 놔둘 테고 그게 또다시 초파리 성체가 되어 날아다닐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반찬을 할 때 참깨를 넣는 경우가 꽤 많은데, 식탁 아래 떨어진 것이 참깨인지 초파리 번데기인지 난감할 때가 많다.

손으로 집어서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괜히 찝찝해서 화장지로 주워 버린다.


신경을 별로 안 쓸 때도 있는데 갑자기 이들의 존재가 나를 화나게 할 때가 있다.

특히 대청소를 하고 나서 깨끗한 상태인데 나를 비웃듯 날아다니는 것 같을 때.

전투태세로 모드를 전환한다.

이전보다 힘을 줘서 잡고 여의치 않을 때는 조금 무거운 물체로 무게를 가해서 잡는다.

잡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아싸~ 너네가 그러면 그렇지. 나한테 잡힐 텐데 왜 우리 집에 와서 그러는 거야?' 혼잣말을 한다.

몇 번 잡다 보면 갑자기 내가 원래 이렇게 잔인한 인간이었나 의문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작은 생명체 하나 죽이지 말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집에 들어온 벌레는 예외로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밖으로 보내거나 죽이는 거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정말 당연할까? 의문이 들었다.

두 아들이 생물에 관심이 많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두 아들은 내가 싫어하는 벌레도 다 귀엽단다.

모기, 바퀴벌레조차도... 

내가 때가 묻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상만 해도 싫은데 말이다.

다행히 이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은 없는데 두 아들이 공원에서 보고는 나를 부를 때가 있다.

제발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는데도 내가 놀라는 모습이 그렇게 재밌나 보다.


그런 두 아들도 초파리는 거슬리나 보다.

앞에서 날아다니면 그냥 놔둘 때도 있지만 잡으려고 한다.

아... 우리 집에 식충 식물이 들어와서 더 그런가 보다.

파리지옥, 끈끈이주걱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초반엔 열심히 잡더니 요즘엔 그냥 방관한다.

눈앞에서 거슬리는 것만 잡으려고 하는데 초파리들은 놀리듯 쌩하며 잘도 피한다.

생존본능이겠지. 

걔들도 나름대로 자손을 퍼뜨리려는 본능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을 뿐인데.

거인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잡으려고 하는 모습에 공포심을 느낄지도?

초파리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려고 해도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 측은지심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우리 집을 더 깨끗하게 하면 될 일일 텐데.

그게 쉽지 않으니 괜히 초파리들 탓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얼른 초파리들이 내 눈앞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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