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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n 01. 2023

나도 한때 마라톤을 했다



마라톤에 대한 기억은 어렸을 때 올림픽에서 봤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렇게 오래 뛰면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만 잠시 했을 뿐 별생각이 없었어요.

내 일이 아니니까 그냥 관심이 없었던 거죠.


남 일처럼 여겨졌던 일이 제 현실로 닥친 것은 30살 직장에서 새로운 부서로 옮긴 후였습니다.

그전 일과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었기에 프리셉터 선생님께 딱 달라붙어서 배워야 했죠.

프리셉터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연세가 조금 있으셨기 때문에 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선생님께서 컴퓨터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냥 정말 인사 삼아 던진 말이었습니다.

"선생님, 마라톤 하시나 봐요? 우와~ 대단하세요!!"

이 한 마디가 저를 마라톤 동호회로 안내하게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급 관심을 보이시더니

"자기도 마라톤에 관심 있어? 나 마라톤 동호회 하는데 한번 같이 가볼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우물쭈물하는 사이 전 어느새 마라톤 동호회에 선생님과 같이 가고 있었어요.

직장에 동호회가 있다는 것도, 그것도 마라톤 동호회가 있다는 사실을 당시 처음 알았습니다.


매주 수요일 남산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신다고 저를 데려가셨어요.

음... 가보니 제 또래는 아무도 없고 모두 30대 후반, 40대 이상의 분들이셨습니다.

그것도 여자는 제 프리셉터 선생님과 저뿐.

다행히 한 분(지나친 관심과 집쩍거리는 것 같은 느낌?) 제외하고는 다들 괜찮은 분이셨어요.

정말 열심히 해 볼 생각은 없었기에 설렁설렁 달리기 연습하고 저녁 먹고 헤어졌어요.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남산에서 몇 번 달려보니 시원하고 좋았어요.

그전까지 운동을 전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헉헉댔지만 그것도 조금씩 괜찮아지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저만치 앞서서 달려가고 계셨지만, 저는 욕심내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습니다.

남산에서 연습할 때 많이 달리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느껴지는 순간이 꽤 있었어요.

약간 오르막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걷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천천히라도 좋으니 달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걷기 시작하면 달릴 수가 없다고...

그 말만 생각하고 정말 천천히라도 달렸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마라톤 동호회 분들은 마라톤에 진심이신 분들이었어요.

마라톤 운동복, 운동화는 물론 마라톤 대회에 대해 알아보시고 참여하시더라고요.

저도 동호회 회원이었기에 10km라도 참여해 보자는 말에 알겠다고 했어요.

마라톤 대회에 42.195km, half course(21km), 10km, 5km가 있다는 것도 그 당시 처음 알았어요.

제가 참여한 대회에 5km는 없었기에 가장 짧은 10km에 지원했어요.

다른 분들은 물론 half, full course를 ㅎㅎㅎ


10km를 그전까지 뛰어본 적이 없었기에 도대체 얼마만큼의 거리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산에서 연습할 때도 10km까지는 뛰어보지 않았거든요.

대회를 앞두고 조금이라도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당시 살던 동네에 하천을 끼고 달릴 만한 곳이 있어서 몇 번 연습을 하긴 했습니다. 많이는 못 했지만...


그렇게 처음 참여한 마라톤 대회에서 선생님들의 당부대로 걷지 않고 천천히 달렸습니다.

10km 완주를 앞두고는 마지막엔 조금 힘을 내서 달렸어요.

다리도 너무 아프고 숨은 헉헉대고 힘들어서 얼른 들어가서 쉬고 싶었거든요.

기록은 1시간 10분 33초.

기록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완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했어요. ㅎㅎ


다른 선생님들 half, full course 들어오시는 것까지 응원한 후에 근처 밥집에 모였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술을 드시더라고요? 술을 마시려고 운동을 하시나 의아했지만...

당시엔 저도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술로 많이 풀었던 때라 같이 마셨습니다. ㅎㅎ

근데 그것이 시작일 줄은 몰랐어요.

그것을 1차로 시작해서 2, 3차까지 가서 그날 밤 10시경에 헤어졌던 것 같습니다.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마라톤 해서 좋아진 체력으로 술을 이렇게 마시는구나...


그것을 시작으로 총 7번의 10km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모두 완주했어요.

정식으로 마라톤을 했다고 말하기엔  10km는 단축코스이지만 제겐 나름 대단한 도전이었어요!

최고 기록은 1시간 4분 16초.

1시간 안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어느 순간 포기했어요. ㅎ

마지막 대회는 2011년 10월 9일이네요.

그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동호회를 그만두고 마라톤은 저 멀리 기억 속에 있었어요.


최근 길거리를 다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 하지 않았던 마라톤 대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린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것을 보면서 나도 한때는 10km 이긴 하지만 마라톤을 했었는데 생각이 났어요.

남편에게 슬쩍 이야기해 봤어요.

우리 운동하고 체력을 좀 길러서 10km, 아니면 5km라도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보지 않겠냐고요.

남편 눈이 동그래지더니 왜 그러냐고 하네요. 본인은 걷는 것도 싫어한다면서...

연애할 때는 제가 걷는 것을 좋아하니까 초인적인 힘으로 몇 시간 걸었던 건데, 달리기라니 말도 안 된대요.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니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아이들을 먼저 포섭해서 온 가족 다 같이 마라톤 대회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하자고 하면 꼼짝도 못 하는 남편이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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