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오디오로 가득한 일상 속에 유독 시끄러울 때가 있다.
좋아서, 즐거워서 소리 지르는 경우는 괜찮지만, 둘이 싸우면서 목소리가 올라갈 때는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보기엔 싸우는 두 아들이 똑같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가늠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두 아들은 다르다. 무조건 상대방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말로 서로를 공격한다. 뭉툭하긴 하지만 저것도 가시인데.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며 예전 일까지 소환한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번 개입한다.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내 말은 지금 저 두 아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본인들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 소리를 다 차단한 것 같다.
그러다 서로의 감정까지 건드린다.
이럴 때 먼저 울먹거리며 눈물을 훔치는 쪽은 대부분 첫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은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씩씩거리면서 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소리친다.
아... 갈 때까지 갔구나 싶다.
동생도 지지 않는다.
나도 형이 싫다며 약간 깐족거리며 얘기한다.
여기서 깐족거린다는 것이 첫째 아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가만히 놔뒀다간 싸움이 더 심해질 것 같다.
둘이 나에게 상대방의 잘못을 얘기하려고 하는데 제지한다.
내가 다 봤으니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각자 감정의 골이 심하면 다른 공간에 있으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굳이 한 공간에 있는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놔둔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는데, 둘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평소의 모습대로.
서로를 위해주기까지 하면서.
이 아이들 뭐지? 싶다.
그래도 이렇게 서로 알아서 푸니까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물끄러미 둘째 아들을 쳐다봤다.
둘째는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미를 뽐냈다.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형이 갖고 있든 말든 손이 먼저 나갔다.
좋아하면 몸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싫으면 집이 떠나갈 것처럼 울었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떼를 써서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뤘다.
시댁에서는 지금도 가끔 이야기하는 에피소드 하나.
명절에 시댁에 갔을 때, 둘째가 아직 많이 어려서(3살 정도?) 친척분 중 한 분이 첫째에게만 용돈을 주셨다.
그런데 둘째, 그 옆에서 손을 내밀며 자기도 달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못 보고 지나치시자 울먹거렸다.
그제야 둘째가 손을 내민 것을 본 친척분은 자기 몫을 챙기는 대단한 아이라며 똑같이 용돈을 주셨다.
그렇게 자기 몫을 제대로 잘 챙겼던 아이다.
첫째 키울 때와는 성향이 전혀 달라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가끔 쳐다보며 "넌 누구냐?"라고 묻고 싶을 만큼.
아니, 똑같은 형제인데, 이렇게 성향이 다르다고? 신기했다.
그제야 다른 집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둘째가 아직 아기였을 때, 남편과 나는 자는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얘기했다.
"아마 둘째는 우리가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에만 간직하고 있던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성격인가 봐요. 어찌 보면 좀 부럽기도 하네요."
시간이 꽤 흘러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진 것 같다. 뭐, 여전히 아기 같은 때도 있지만.
분명히 6살이 되면 유치원에 다니는 의젓한 형님이 됐으니 자기 발로 걷겠다고 했다.
그전까지 많이 업혀 다녔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도 걷다 힘들면 업어달라고 얘기한다.
솔직히 이젠 꽤 무겁다. 많이 커서 무거워서 못 업겠다고 하면 입이 이만큼 나와있다.
못 본 척하고 혼자 걷게 할 때도 있지만 아주 가끔은 잠깐 업어준다.
그런데, 이 아이,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다더니 계단이 나오면 쏜살같이 오르내리고 달리기를 하자고 한다.
이게 뭔 일인가 싶다. 그냥 걷기만 싫다는 것인가?
어쨌든 요즘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성향이 남아 있다.
그래도 양보도 많이 하고 엄마 일도 도와주고 이쁜 말도 많이 하기도 해서 이쁨을 받기도 한다.
저 아이의 생존본능인가 싶다.
둘째로 태어났으니 처음부터 형이라는 경쟁자가 있는 상태였으니 자신의 존재를 뽐내기 위한 본능 말이다.
그래서 가끔 둘째에게 물어본다.
"너는 누구냐?"
"나요? 내가 누구긴 누구예요. 우주 최강 귀요이 oo이지요!" 하면서 해맑게 웃는다.
귀염둥이, 귀염돌이, 귀요미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둘째 아들.
그래, 평생 나에게 귀요미로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