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책상이 생겼다!!
이 공간만큼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왜 예전에는 이런 기분을 몰랐을까?
아마 나만의 작은 공간에 대한 소중함을 몰라서 그랬을 거다.
학창 시절 책상이 있었다. 여동생과 둘이 나란히 앉아서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난 공부를 했다. 아마 공부만 하지는 않았을 거다.
책상에서 많은 것을 했을 테고, 아마 책상에 앉는 것이 귀찮은 날엔 방바닥에 배를 딱 붙이고 누웠을 거다.
공부한다고 누웠지만 어느새 잠들었을 테지. 이건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특히 추운 날, 뜨끈뜨끈한 방에 배를 대면 어느새 졸졸 잠이 오니까.
직장 때문에 혼자 서울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숙사에 살 때를 제외하고는(공용 책상이 있긴 했다) 책상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처음 원룸에서 살 때, 작은 책상이 옵션으로 있는 곳에서 살았다.
작은 책장에는 책을 몇 권 꽂고 (너무 작아서 다른 곳에 책을 쌓아뒀던 기억이 난다) 책상에서는 책을 읽거나 직장에서도 공부는 해야 했기에 공부를 했다.
다음 이사한 곳에는 책상이 없어서 책장과 책상을 세트로 저렴한 것을 구매했다. 책장은 책이 200권 넘게 있었기 때문에 책을 좀 많이 꽂을 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샀다.
(이 책장은 지금까지 우리 집에 있다. 이렇게 오래 사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거의 15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면서 내 책들을 꽂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그렇게 혼자 살 때 난 책상과 책장을 자주는 아닐지라도 종종 이용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했다. 두 아들도 태어났다.
결혼해서 지금 이 아파트에 와서도 책장과 책상은 함께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책상이 너무 걸리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결혼해서 책상에 앉은 날이 거의 없었다.
두 살 터울의 남자아이들을 보느라 정신없을 때였으니까.
그때 남편의 대형 책상이 집에 들어왔다. 본인이 일하는 곳에 다시 가져가기 전까지 잠깐 집에 놔둘 것이라고 했는데, 그 기간이 조금 길었다. 그 책상이 집에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책상은 더 쓸모없어 보였다.
그래서 정리했다. 책상과 수납장에 긴 상판만 있는 책상이었기에 폐기물 신고를 하고 처리했다.
그렇게 책장만 남았다. 깔끔했다. 만족스러웠다.
그 사이 남편이 가지고 왔던 큰 책상도 남편이 가지고 가면서 우리 집에 책상은 없게 됐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책상이 필요할 땐 식탁에서 했다.
새벽이나 밤늦게 줌 수업을 들어야 할 때면 좌식책상(원래 용도는 캠핑용 식탁)에 앉아서 했다.
불편했지만 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내 책상이 갖고 싶었다.
예전에는 필요성을 잘 몰랐는데 이젠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에서 무언가 하고 있으면 두 아들도 자리를 딱 잡고 앉아서는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식탁에서 하면 항상 정리를 해야 했고, 이 공간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 싶었다.
그러다 거실에 책상을 놓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느 한 영상에서 봤다.
이거다 싶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다. 거실을 온 가족의 책상과 책장으로 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랄 때까지.
이젠 그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둘째 아들도 자기 책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계기로 정리가 시작됐다.
거실과 서재방을 싹 정리하고 거실에 책상과 책장을 놓았다.
와!! 나만의 책상이 생기면서 좁지만 이 공간만큼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기쁘다.
남편과 바로 옆 책상이어서 둘이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다.
내 책상이 생기면서 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을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한다.
예전엔 어디에 갈까 방황했다면 지금엔 내 책상이 하나의 쉼터가 됐다.
뭐, 거실이고 두 아들이 방학이라 소음이 끊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 있으면 뭔가 안정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기에 계속 있게 되나 보다.
각자 책상이 생기면서 본인들만의 개성으로 책상을 사용한다.
나는 노트북과 책, 다이어리 등 필요할 때 사용할 것만 놔두고는 모두 정리해 놓는다.
원래 깔끔한 것을 좋아하기에.
둘째 아들은 그림 하나만 놔두고 싹 치웠다. (가끔 얘가 나보다 더 심한 깔끔쟁이 같다. 예전엔 몰랐는데 자기 공간이 생기니 엄청 깔끔하게 한다)
첫째 아들은 음... 온갖 물건을 책상에 올려두고 사용한다. 한 번 사용한 것은 정리하면 좋겠구먼, 그냥 계속 쌓아둔다. 그래서 보면 정신이 없다. 그런데 자기는 그게 편하다고 한다.
(정말 편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가끔 책상을 놔두고 식탁에 앉는 것을 보면 자기도 정신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지 자기 개성이라고 한다. 놔둔다. 자기 책상과 책장은 본인이 정리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어쨌든 책상을 보면서도 그 사람의 성향을 조금은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다.
네 식구가 책상 위에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기기도 하고.
함께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도 좋고.
나는 하나의 피난처 같은 느낌이 드는 이 공간이 좋다.
작지만 소중한 나의 공간이다.
오늘도 내 책상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