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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을 대하는 마음

by 느린 발걸음


11월 마지막주 첫눈이 내렸다.

벌써?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니,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첫눈을 바라본 나는 온 마음으로 눈을 반기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하얗게 변한 세상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있던 찌꺼기들이 하얗게 덮이는 느낌.


간밤에 눈이 꽤 쌓였는데도 눈이 그쳤다 내렸다 반복하고 있었다.

하얀 세상을 내 마음속에 남기기 위해 두 아들 학교, 유치원 데려다주고 공원에 잠깐 나갔다.

눈으로 쌓인 길을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었다.

나, 아직 눈을 반기는 것을 보니 세상에 찌들지만은 않았구나 안심이 된다.

최근 왠지 모르게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는데.

눈을 바라보니 조금은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따스한 마음마저 스며드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아니, 어쩌면 출퇴근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직장에 다닐 때 이런 여유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눈길을 걷다 보니 두 아들 생각이 절로 났다.

집에 오면 분명히 밖으로 나가자고 할 거다.

나도 두 아들과 함께 눈을 밟으며 놀고 싶기도 하고.

집에 가서 아이들 방수되는 옷, 장갑, 부츠를 챙겨놓았다.

역시, 두 아들 집에 오자마자 나가겠다고 한다.

밖에는 이미 하교한 중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눈을 만끽하고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도 눈을 즐기며 노는 모습을 보니 눈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뭐, 두 아들과 함께 나오면 그런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다.

먼저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적당한 크기로 만들기로 해서 눈을 뭉쳤다.

날씨가 조금 따스해져서 그런지 눈이 손에서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눈이 파스스 날아가서 뭉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어느새 뭉쳐지고 있다.

어느 정도 됐다 싶었을 때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고 둘째 아들이 가져온 조그마한 돌멩이로 눈을 만들었다.

코는 눈을 덧붙여 튀어나오게 하고 입은 나뭇가지로 모양만 잡았다.

나뭇가지는 떨어졌지만 모양은 그대로 남아서 입까지 완성!

그런데 입이 조금 삐친 모양이다. 거꾸로 할 걸 싶었지만 이런 눈사람도 있고 저런 눈사람도 있으니까.

눈사람도 항상 기쁘라는 법은 없으니까. 혼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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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과 함께한 하루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엔 눈이 꽤 쌓여서 발이 푹푹 빠졌다.

그제야 눈이 꽤 많이 내렸음을 안다.

눈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며 두 아들과 여기저기를 걸었다.

가다 멈춰서 눈싸움도 하고.

둘째 아들은 여기서도 승부욕이 발동한다.

저 아이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데 무섭다.

피하지만 늦었다.

뒤로 돌아서서 등뒤에 눈덩이가 나를 덮치는데 꽤 아프다.

이 아이, 진심으로 눈싸움에 임하고 있다.

나도 질 수 없다.

눈덩이를 뭉쳐 두 아들에게 달려간다.

하지만 2:1의 싸움이다 보니 내가 불리하다.

내가 던지는 눈을 여기저기 잘 피하기도 하고.

얄밉다. 하지만 그래도 재밌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기온이 떨어짐을 느낀다.

초등학생, 유치원생,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도 밖에 나와서 눈을 함께 즐긴다.

각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눈무덤을 쌓아서 주변에 눈오리로 경계를 세웠다.

왜 이러고 놀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재밌다니 뭐 나도 함께 하고 있다.

2시간 정도 실컷 놀고 나니 오후 5시가 다 되어간다.

이젠 꽤 추워지는 것 같다. 두 아들에게 집에 들어가자고 한다.

둘째 아들, 아직 덜 놀았단다.

도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부럽다.

10분만 더 놀고 집에 들어가자고 한다.


집에 와서 밖을 보는데 여전히 하얀 세상이다.

좋다.

언젠가 녹을 테지만 저 눈을 보며 하얀 마음을 잠시나마 가졌으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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