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읍'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에만 살아와서 처음엔 영 어색했다.
왠지 TV 드라마 등에 나오는 촌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
내가 생각하는 촌은 사방에 논밭뷰가 쫙 펼쳐진 곳인데,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논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 주변을 둘러보면 동서남북 각기 다른 풍경을 지닌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직장이 서울이어서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부터 서울에서만 살았다.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고 주변에 문화생활할 곳도 많아서 편했다.
그래서 결혼한 후 이사할 때도 당연히 서울 내로 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 집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편이 경기도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별로였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이 내가 중심에서 밀려나는 느낌이어서.
하지만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그나마 서울 근처이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가 생각난다.
서울에선 북적북적거리고 정신없었는데 이곳은 왠지 그런 분위기와는 달랐다.
뭔지 모르게 조용하고 차분했다.
560세대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도 조용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큰소리로 떠들거나 소리치는 사람도 없었다.
오... 마음에 들었다! 집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는데 주변 분위기도 내 맘을 사로잡았다.
창밖을 내다보면 한강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논밭도 조금은 보인다.
내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이곳이 너무 조용해서 나 혼자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TV를 사자고 해서 샀지만 거의 보지 않았다.
나는 이런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곳에 살면서 깨달았다.
처음엔 드문드문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낮은 상가 건물들이 있었고, 해가 지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기에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과 밤에 야식이라도 시켜 먹으려고 하면 문을 연 곳이 없었기에 그냥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도 꽤 많이 바뀌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도 하나 둘 생기고 상가 건물들도 이전 것을 허물고 고층으로 올라갔다.
행정복지센터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만들어져 도서관도 자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곳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서울에서 느낀 복작거림과는 거리가 멀다.
두 아들이 태어나면서 이곳에서 생활이 빛을 발했다.
이전까지 관심도 없고 본 적도 없던 온갖 생물체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두 아들이 자연, 생물에 관심이 많다 보니 나도 덩달아 하나 둘 알아가고 있다.
지렁이, 메뚜기, 사마귀, 풀무치, 두꺼비, 개구리,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귀뚜라미 등을 어렵지 않게 길가에서, 잔디에서 만날 수 있다.
근처에 작은 산도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오르면 운동도 되고 산에서 사는 생물들도 만난다.
저절로 자연학습이 되는 셈이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비둘기도 여기선 거의 보지 못했다.
대신 까치와 가끔 까마귀, 강 근처라 그런지 갈매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온갖 철새들을 볼 수 있다.
사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이 많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끔 아닌 사람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다행인지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는 하지만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는 없어 보인다. (걱정은 하지만.)
브런치 카페에도 엄마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드물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다.)
초등학교, 중학교가 집 근처 가까이에 있어서 주변에 술집도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도 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맞는 곳이다.
가끔 남편이 물어본다.
"우리도 이제 서울 가서 살까요?"라고.
예전엔 언제든 갈 수 있음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전혀 다르다.
이 '읍'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대형마트, 영화관, 키즈카페, 문화시설이 없어서 조금 아쉬울 때도 있지만 이건 감수할 수 있을 정도다.
자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불편할 때가 있지만, 지하철이 생겨서 이전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조금 편해졌다.
집을 나서면 조그만 공원이 있어서 걷거나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그런데 걷다 보면 조금 더 큰 공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있다.
그래도 이곳이 내겐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인 것 같다.
두 아들도 마찬가지고. 시끄럽지 않은 조용한 곳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읍'에 사는 여자로 만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