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가족 책상이 생겼다.
드디어 몇 년 전부터 꿈꿔왔던 내 로망이 이뤄진 셈이다.
가장 좋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각자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나다. 집에 있을 땐 거의 내 책상에 앉아 있으니까.
나에겐 일종의 피난처자 쉼터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다.
가끔 두 아들이 내 자리를 침범하려고 하면 제지한다. 여긴 내 공간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가족 책상을 구상할 때, 처음 계획은 책상 네 개를 스크린보드 없이 개방감 있게 하는 거였다.
탁 트인 곳에 네 명이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서로 할 일을 하는 그런 풍경을 기대했기에.
그런데 내가 책상 주문을 잘못했다.
설치기사님이 오셔서 스크린보드를 설치하실 때야 주문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남편이 스크린보드 있는 것이 집중력에도 훨씬 좋다고 얘기해 줬다.
그래, 답답하면 나중에 스크린보드만 떼면 되니까 원래대로 설치해 달라고 했다.
설치가 끝났을 때 개방감은 덜했지만 각자의 공간이라는 것이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스크린보드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아찔하다.
바로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첫째 아들 책상을 봤기 때문이다.
분명히 처음 설치했을 때 모두 똑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그곳에 자기 나름대로 물건들을 세팅해 놓고 정리했다.
나는 노트북, 미니달력, 독서대와 책 한 권은 항상 놔두고, 다른 것들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고 정리한다.
남편 책상 위엔 프린터기, 독서대와 책 한 권이 있다.
둘째 아들 책상은 정말 깔끔하다. 1~2개 물건을 장식해 놓다가도 몇 시간 지나면 다 정리해 버린다.
깔끔한 것이 좋다면서. 가끔 연필, 볼펜 등이 묻으면 얼른 닦아달라고 한다. (가끔 심하다 생각될 때도 있다.)
그에 비해 첫째 아들 책상은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물건들의 집합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을 사용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쓰고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두니까.
뭐,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물건이 몇 개 없었으니까. 알아서 치우겠지라는 생각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저곳을 지날 때엔 눈을 질끈 감고 지나야지 아니면 나까지 정신이 없어진다.
저런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첫째가 신기했다.
나, 남편, 둘째 아들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책상을 그렇게 사용하면 좋냐고. 너무 정신없다고.
하지만 첫째 아들, 굳건히 버틴다. 자기는 이게 좋다면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고.
(거짓말. 물건 제자리에 놔두지 않아서 매번 찾으면서. 가끔 그걸로 울먹거리기도 하면서)
치우고 싶은 마음은 한 가득이지만 그런 마음을 애써 눌렀다.
한 번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첫째 아들은 언제든 내가 치워 준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정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정리하고픈 욕구를 꾹꾹 눌러 담은 채 저 공간은 애써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지만 스크린보드가 차단해 주니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첫째 아들 책상은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몇 번 치운다고 치우기는 했다.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책상 한 곳에 쌓아두는 식으로.
아, 이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지러운 공간에서도 잘 생활하던 첫째가 어느 날부터 그 공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서 하면 될 일을 굳이 식탁에서 하는 거다.
식탁은 이제 음식을 먹는 공간으로만 사용하려고 했는데.
너도 정신이 없으니까 식탁에서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 아니라고 잡아뗀다.
그냥 식탁에서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서.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저런 모습도 그대로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성격이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
어지럽혀진 책상을 보면 내 마음까지 어지러워지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냥 정리하기엔 내가 손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잠깐 고민한다.
그러다 첫째가 동의한다면 돈을 받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에게 제안한다.
"엄마가 네 책상을 정리해 줄 테니, 수고비를 줘요."
"얼마요?"
(오, 빼지 않고 내 제안을 덥석 무는 것을 보니 자기도 심하다고 생각은 했나 보다.)
"음, 내가 굳이 내 시간을 들여서 네 책상을 정리하는 것이니 만원을 줘요."
"만원이요? 너무 비싸지 않아요? 조금만 깎아주세요."
"비싸요? 내가 내 시간 들여서 치워주는데? 음, 좀 심한가? 그럼 반값으로. 5,000원은 어때요?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해요."
"5,000원이요? 음... 알았어요. 5,000원을 줄 테니 제 책상 치워 주세요!"
그러고는 5,000원을 꺼내서 나에게 내민다.
오~ 선불로 받았으니 그럼 이제 정리를 시작해 볼까?
정리를 시작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고민한다.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도 아주 잠깐 계산한다.
솔직히 생각대로 되진 않는다. 시간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땐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치우기 시작한다.
많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원래 자리가 있던 물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들은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그러다 아들 둘 같이 사용하라고 사준 서랍을 봤다. 첫째 아들 서랍이 텅텅 비어있다.
이곳에다 하나둘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니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물건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그럴수록 내 기분은 좋아진다. 난 왜 이런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걸까? 어쩔 수 없지.
정리하면서 왜 쓰레기들까지 책상 위, 아래에 있는지 의문스럽다.
분명 쓰레기는 버리라고 했는데, 쓸 필요가 있다면서 버리지 않는데,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치우기 싫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쓰레기를 쓴 적은 본 적이 없으므로.
그렇게 시간을 조금 들였더니 첫째 아들 책상이 말끔해졌다.
모든 물건을 서랍에 넣으면 좀 그럴 것 같아 몇 가지만 책상 위에 올려뒀다.
이렇게 정리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젠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면서.
첫째 아들, 다 정리된 책상을 보며 오~~ 감탄사를 내뱉는다.
물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면서, 확실히 깨끗하니 좋긴 좋다는 말을 한다.
그래, 어지럽기만 했던 공간이 깨끗해졌으니 이 상태를 잘 유지해서 책상을 잘 이용하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 아들과 아이들 이모(여동생)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 책상 정리된 거 언제까지 갈 것 같아?"
"음. 일주일? 이모는?"
"일주일? 너무 길게 잡은 거 아냐? 난 하루라고 본다."
"에이, 이모. 하루는 너무하잖아. 난 일주일."
어쩜, 누구도 이 책상이 깨끗하게 유지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다니.
첫째 아들, 너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내 바람과 달리 정리한 그날부터 책상에 물건들이 쌓이는 것이 보인다.
음, 이건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른데?
아니야. 지금은 사용하고 있으니 다 사용하고 나면 정리할 거야.
하지만 첫째 아들 책상에 놓여있던 물건들은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하나 둘 쌓이더니 며칠 지나자 그전과 비슷한 상태가 됐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돈 받고 치워주는 것도 보람이 있어야 하지.
며칠 만에 원상 복귀된 첫째 아들 책상을 보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아주 가끔 스스로 치우기는 한다. 이게 정말 치운 것인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언젠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면 알아서 치우겠지?
그러길 바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