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들이 선물한 노란 장미 한 송이

by 느린 발걸음

내 책상에 놓여 있는 노란 장미 한 송이.

노란색의 발랄함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황홀한 향기에 취한다.

책상에 꽃 한 송이가 있고 없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아, 이건 첫째 아들의 사랑이 담긴 선물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였다.

벚꽃이 언제 폈는지도 모르게 길가를, 공원을 고운 하얀 자태로 유혹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 가끔은 사진기로 찍으면서 봄이 주는 조금 늦은 선물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비소식이 있었다.

아, 비가 내리면 이 벚꽃들이 한순간에 다 후드득 떨어지겠구나 아쉬움이 남았다.

두 아들에게 지금 보지 않으면 내년에나 볼 수 있을 거라고 길가에 핀 벚꽃을 실컷 눈에 담으라고 했다.

(다행히 벚꽃이 다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아이들 이모가 호수공원에 놀러 가자는 것이다.

자기가 조퇴해서 오면 된다고.

그렇게 조금은 더운 듯한 날, 택시를 타고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원래 벚꽃을 구경하러 간 곳이건만, 두 아들이 가족 자전거를 타자고 한다.

원래 30분만 타려고 했는데 재밌다고 1시간을 탔다.

나와 여동생이 번갈아 가면서 페달을 열심히 돌려서.

아이들도 끝에서 조금 돌렸는지 힘들단다. 그럼 나는??

어쨌든 5시가 되어가니 배가 고프단다.

아, 꽃구경은 시작도 못했는데.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배부터 든든하게 채우자고 말했다.


식당을 찾으러 가는 길에 꽃집이 보였다.

나는 원래 꽃집이 보여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뭘 딱히 살 생각이 없기에.

그에 비해 두 아들은 꼭 멈춰서 구경한다. 관심의 차이겠지.

그래서 그런지 집 베란다에는 아이들 화분만 있다.

엄마, 아빠가 신경을 안 쓰니 자기들이 분갈이도 하고, 물도 주고, 영양제도 준다. 기특하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쳤을 나였는데, 그날따라 내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 있었다.

노란 장미꽃.

왜 봄이 되면 그렇게 노란색이 눈에 띄는지 모르겠다.

생기발랄하고 활기찬 기운을 내 곁에 두면 나도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는 건가?

어쨌든 다른 꽃들도 많은데 노란 장미가 내 눈에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향을 맡고 있었다.

아, 얼마나 달콤한지. 향기 없는 꽃도 좋지만, 이렇게 향을 내뿜는 꽃을 마주하면 내 마음도 두근댄다.


나도 모르게 첫째 아들에게 말한다.

"엄마, 이 노란 장미 한 송이만 사줘요."

당연히 거절할 걸 예상하고 한 소리다. 그냥 내뱉은 말.

그런데 돌아오는 표정과 대답이 의외다.

"알았어요. 한 송이면 되는 거예요? 가격이 얼마일까요?"

오~ 이건 예상외의 전개다. 자기가 돈 가진 것이 있으니 엄마에게 선물로 사주고 싶단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어머님이 병원 외래 때문에 집에 오셨을 때, 아이들에게 오만 원씩 주셨다.

둘째 아들은 다 저금해 달라고 했는데, 첫째는 웬일로 이건 자기가 쓰겠다고 했었다.

그 소중한 돈을 지금 엄마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 아닌가.

고마운 마음도 컸지만 어쩐지 아이 돈을 뺐는 것 같아 괜찮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는데 괜찮단다.

표정에 설렘도 느껴진다. 그래, 선물해 주면서 저렇게 기뻐하는데 기쁘게 받는 게 더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한 송이 오천 원이란다. 기꺼이 사주겠다고 하는 초등학교 3학년 첫째 아들.

가게 사장님께서 아들이 너무 기특하다며 서비스로 안개꽃도 한 개 꽃아 주신다.

포장도 원래 안 해주는데 특별히 해주시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첫째 아들 칭찬을 하시고, 부럽다고 말씀하신다.

왠지 부자 된 기분이다.

옆에 있던 애들 이모가 "나는?"이라고 말해 첫째 아들, 이모에게는 보라색 프리지어를 오천 원치 선물했다.

꽃을 포장해서 들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소중하게 대하고 있었다.

누가 선물해 준 꽃인데 이러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이후에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꼭 쥐고 있었다.

길 가다 꽃향기를 맡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첫째 아들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핀다.

그래, 이런 게 사랑이구나 느낀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은 자기도 뭔가 해주고 싶었는데 돈을 다 저금해서 아쉬웠나 보다.

다음날 내게 안기더니 형에게 받은 꽃이 다 시들어 버리면 자기도 엄마에게 꽃 선물을 해줄 거라고 한다.

첫째 아들이 준 꽃은 말려서 이쁘게 보관할 예정이지만, 둘째 아들의 마음에 또 한 번 웃음이 핀다.

이쁜 아들들이다. 머리 아플 때도 많지만, 이럴 때 보면 사랑스럽다.

아니, 매번 사랑스럽긴 하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에너지를 내뿜을 때가 많아서 그렇지.


지금도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괜스레 꽃 향기도 한 번 더 맡아본다.

보면 볼수록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틀린 그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