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뚜렷하지 않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사람.
어렸을 땐 타인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뭐, 다들 한 번쯤은 그런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르며 자랐으니까.
나도 유명한 사람이 되어 TV 등에 나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다만 내성적인 성격이었기에 이런 욕망을 들키지 않게 꼭꼭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
하지만 나이가 하나 둘 들어감에 따라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잘 알려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서서히 사라지고,
평범하게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과 이 정도면 평범하게 사는 게 아닐까 위로하며 살고 있다.
다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이건 특별한, 유명한, 위대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 더 성숙하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니까.
어쩌면 이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가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망각한다.
나 정도면 괜찮지 않냐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는 얘기겠지.
10월 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
보통 명절에 시댁에서 3박 4일을 보내는데, 이번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정이 짧아졌다.
추석 당일 밤에 우리 집에 도착했고, 친정엄마는 추석 다음날 점심때쯤 우리 집에 오셨다.
(강원도에 갔다 오면 친정인 부산까지 가는 게 힘든 데다, 삼 남매가 다 경기도에 살고 있어서)
목요일 나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친정엄마와 두 아들은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내 책상 맞은편에 앉아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시어머님께 전화가 와서 통화했다.
통화를 다 마친 후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
"어머님이 20일 월요일 외래여서 원래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오려고 했는데, 목요일에 둘째가 모시고 온대요. 전날 아버지 제사 끝내고 그때 모시고 오겠다네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속으로 '하,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시어머님이 허리 협착증, 디스크 수술하시고 퇴원 후 우리 집에 일주일 넘게 계셨다. 추석 전주까지 계신 셈.
추석 때 시댁 갔다 오고, 추석 다음날부터 그 주 토요일까지 친정 엄마가 계실 거였다.
시어머님이 외래 때문에 오시긴 하지만, 그래도 일주일 정도는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 거다.
어머님이 둘째 서방님 댁에 가지 않고 우리 집에 오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불만일 때는 있지만, 어머님이 우리 집을 더 편하게 여기시는 것도 있고, 첫째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당시 우리 집에 어머님들이 계속 오셔서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은 어느 정도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충전 가능하다. 몸도 마음도.
그런데 9월 중순부터 그럴 시간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어른들이 오시는 걸 뭘 그리 신경 쓰냐고 할 수도 있다. 그냥 먹던 것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어쨌든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신경이 쓰인다.
청소도 한번 더 하게 되고, 가장 걱정인 건 매 끼니 뭘 해야 하느냐다.
이런저런 복합적인 감정에 남편이 어머님이 목요일에 오신다는 얘기를 했을 때, 내 표정과 말투가 내켜하지 않는 게 그래도 드러났다 보다. 남편은 그게 좀 서운했고.
친정엄마가 올라오시면 이렇게까지 불편해하지 않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데, 뭐,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어머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신경을 더 쓰게 되고, 친정엄마만큼 편하진 않으니까.
둘 다 첫째라서 양가 부모님이 오시면 으레 우리 집에 모시는 게 당연시되는데, 그게 좀 싫을 때도 있다.
똑같은 자식인데 왜 첫째만 이런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하나 싶어서.
그런 생각까지 스멀스멀 피어올라서 감정에 다 드러났을 거다.
남편은 잠깐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겠다고 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자, 내가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의미다.
이런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가 또 감정이 앞서 나갔다 보다 생각했다.
남편은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해 봤단다.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했다. 그리곤 결론을 내렸단다.
본인은 위대한 사람이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른 거라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위대한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까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지금은 이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조금씩 계몽(?)시켜가겠다고 했다.
남편의 장난 같은 장난 아닌 그 말이 처음엔 어이가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찰떡같았다.
가끔 남편을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싶을 때가 꽤 있으니까.
남편은 나와 결혼하는 동시에 우리 가족도 본인 가족과 동일하게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단다. 장인, 장모님이 아니라 그냥 어머님, 아버님처럼 생각하고 대한다고.
잘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쩔 때는 나보다 더 친정을 생각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더 살갑게 대하기도 하고.
그러니 남편은 우리 집에 누가 봐도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거였다.
시어머님이 오시든, 친정엄마가 오시든. 그러고 보니 7년째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내가 더 불편해한다;;)
남편 얘기를 듣고 나서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랑 사니까 힘들 때가 있네요. 오빠도 위대한 사람이라 평범한 사람이랑 사는 게 쉽지 않겠네요."
남편은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 후 서로 가끔 얘기한다.
“오빠는 위대한 사람이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나의 부족함이 느껴질 때 이렇게 얘기한다. 인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남편이 가끔 놀린다고 써먹을 때는 인정하면서도 약 오를 때도 있지만.
나도 마음을 좀 크게 먹고 싶다. 그러면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 많이 멀었다. 그래도 인지하고 있으니 다행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