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보통 강원도 시댁에서 2박 3일~3박 4일을 보낸다.
올해는 추석 명절 연휴가 길어서 3박 4일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예전에 더 길게 있어봤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힘들어하는 내가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몇 번의 테스트 결과 양가집에 머물 수 있는 최대 기간이 3박 4일임을 알았다.
남편에게 이야기한 후 그 다음부터는 그 이상은 머물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 일 때문에 토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추석 당일 월요일 저녁쯤 올라오게 됐다.
친정인 부산에는 내려가지 못해서 친정엄마가 추석 다음날 올라오시기로 하기도 했고.
그래서 보통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짧은 일정으로 강원도에 갔다.
시댁은 명절 때 차례를 지낸다.
어머님은 매번 올해는 많이 안 하신다고 하는데 차례상을 보면 한가득일 때가 많다.
그만큼 차례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할 일은 많지 않다.
둘째 서방님, 막내 도련님이 알아서 척척 하신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 오셔서 그런지 나에게 뭘 시키질 않는다.
결혼 후 처음엔 그게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나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가시방석인 기분.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두 분이 안 계실 때, 어머님이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는 정도다.
올해 추석엔 동서가 오지 못했다. 친정어머님이 아프셔서 병간호를 해야 해서.
어머님도 허리 수술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데다 연세가 드셔서 컨디션이 예전같이 않으셨고.
둘째 서방님, 막내 도련님은 우리가 강원도 가기 전에 밭에 있는 고추를 다 따서 정리하느라 힘드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올해 추석엔 떡뿐 아니라 전, 튀김도 살 수 있는 건 다 사기로 했다.
집에서 한 건 나물 몇 가지, 탕국, 잡채, 생선 정도.
나는 무나물, 탕국에 들어가는 무를 썰고, 어머님이 음식 하실 때 옆에서 조금 도와드렸다.
조촐하게 한다고 했는데도 산 게 많아서 그런지 가짓수는 꽤 됐다.
드디어 추석 당일.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가 와서 집에서 차례만 지내고 산소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차례를 다 지내고 시댁에서 좀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저녁이나 밤쯤에 집에 가야 하는데,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되도록 자지 않으려고. (매번 다짐에 그칠 때가 많지만. 신기하게 강원도 갈 때는 밤중이라도 졸리지 않는데 집에 가는 길엔 그렇게 졸린다.)
그런데 갑자기 시댁 식구들이 분주해졌다.
얼른 차례상을 치우고 재기를 정리한 후, 밥 먹고 설거지 등 정리를 후다닥 하고 밖으로 나가자는 거다.
시댁에 있으면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서 힘들다고.
본인들도 그렇지만 며느리인 내가 불편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불편해했나?)
그렇게 집을 놔두고 추석 당일, 시댁 탈출기가 시작됐다.
밖에 나가는 김에 각자 집에 갈 짐도 다 챙겨서 나가자고 했다. (막내도련님은 며칠 더 계실 거라 제외)
다시 시댁에 오면 시간이 걸리니까 밖에서 헤어지자면서.
그래서 어머님이 주신 김치, 된장, 들기름, 추석 음식 등을 싸서 차 트렁크에 싣고 출발했다.
차 세 대가 시댁에서부터 쭈르륵 움직이기 시작! 누가 보면 무슨 일이 있어서 탈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시댁을 나오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했다.
원래 춘천 레고랜드를 가려고 했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다 비 오는데 다들 힘들 것 같아 패스.
출렁다리 또한 2시간 넘게 걸려서 패스.
그래서 그렇게 멀지 않은 아야진 해변에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비가 내렸다 멈췄다 반복하는 날씨여서 멀리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해서.
카페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차, 베이커리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추석 당일인데 카페에 사람이 가득 찼다. 다들 우리처럼 탈출한 사람들인가? 싶었다.
예전에는 손님들 맞고 그런 게 당연했는데, 이젠 서로 편한 걸 찾는 것 같다.
가족들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기에 이런 날이라도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카페에서 시간을 조금 보낸 후 강원도를 잘 아는 막내도련님을 따라 미시령 옛길 전망대로 출발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도착했는데, 비와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도 세게 불어 차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그냥 스쳐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때여서 점심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왜 편한 집을 놔두고 우리는 이렇게 나와서 고생을 하는 걸까요?"
"그러게요. 친척들 오면 며느리가 힘들다고 다 같이 나오긴 했는데, 피곤하네요."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곤할 수밖에 없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도 힘든데.
30분 정도 기다려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어딜 가나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밖은 여전히 비가 오고 날씨는 추웠다. (강원도 추위를 이럴 때 실감한다.)
다들 시댁을 벗어나 쉬려고 나왔는데 지친 기색이다.
점심을 먹고 더 이상 어디를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힘들어서 헤어지기로 했다.
그 시간이 오후 3시 정도. 생각보다 빨리 헤어지는 셈.
두 아들은 아쉬웠는지 다시 시댁으로 가서 더 놀자고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피곤했다.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30분 정도를 왔는데, 다시 왔다 갔다 하기엔 다들 지쳤으니까.
그렇게 어머님과 막내 도련님은 다시 시댁으로, 우리 식구와 둘째 서방님은 각자 집으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피곤해서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자기도 했다.
어머님과 막내 도련님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1시간 넘게 주무셨단다.
다들 조금이라도 편하자고, 쉬자고 시댁을 나왔는데, 정말 쉬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날씨가 좋았으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좋았으려나?
다음 명절에도 이번처럼 탈출하자고 하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