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by 느린 발걸음


9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이 시를 한 편 뚝딱 써서 내게 내밀었다.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라면서.

무슨 시를 썼을까 두근두근했다.

실은 거짓말이다. 별 감흥이 없었다.

가끔 시를 써서 나에게 주기도 했고, 다른 일로 바빠서 시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짧은 글이라 그냥 빨리 읽으면 되는데, 가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바쁜 것 같은지 자기가 읽어주겠다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낭송을 시작했다.


제목 '잔소리'.

이런. 나의 잔소리를 주제로 시를 썼군. 일을 하면서도 뜨끔한다.

아니 근데 솔직히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잔소리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래도 아이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지. 그래, 잠자코 들어보자.


다음은 아이가 쓴 시 내용이다.

맞춤법이 틀린 게 간혹 있지만 그냥 수정하지 않는 게 아이다워서 그대로 놔뒀다.



잔소리


엄마는 맨날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런대 왜 엄마는 잔소리를 맨날 할까

잔소리를 하면 기분이 좋아서 아니다

잔소리를 하면 버릇이 고쳐질까 봐 맞다

그럼으로써 나는 오늘도 잔소리를 듣는다




아이가 읽어주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도대체 나의 잔소리를 어떻게 써 내려갔을지 궁금해서.

먼저 첫 문장에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언제 맨날 잔소리를 했다고 저런 말을 쓰는 거지 싶어서.

하지만 뭐,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는 건 사실이긴 하지. 그건 몇 번 말해도 안 들으니까 그런 건데.

억울하긴 하지만 각자 받아들이는 건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이어진 뒷 문장에서 왜 엄마가 잔소리를 맨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나열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나도 궁금했다. 아이가 생각하는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잔소리를 하면 기분이 좋아서는 아니라고 한다. 다행이다.

가끔 얘기한다. 나도 잔소리하기 싫다고. 입 아프게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그런 얘기를 들어서일까. 아니면 잔소리할 때 내 표정이 지쳐 보여서 그래서였을까.

어쨌든 내가 좋아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버릇이 고쳐질까 봐'라는 다음 문장에서는 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다.

솔직히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잔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건데.

기저에는 저런 생각이 깔려있을지도 모르지.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들이고, 나쁜 습관은 서서히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린아이 입장에선 저렇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걸 안다.

나만 해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으니까.

어쨌든 이 문장에서 오~라는 감탄사를 속으로 내뱉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 '그럼으로써 나는 오늘도 잔소리를 듣는다'에서는 빵 터졌다.

이건 버릇이 고쳐질 때까지는 내가 매일 잔소리를 해도 된다는 얘긴가?

그건 또 아니겠지. 내가 얘기하려고 하면 '아, 또 잔소리'라고 말할 때가 있으니까.

가끔은 어이없다. 그냥 말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잔소리라고 치부해 버려서.

내가 그동안 잔소리를 많이 했나 싶기도 한데.

가끔 두 아들이 잔소리에 대한 역치가 너무 낮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상대적일 수도 있다.

남편은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으니까 내가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아닌가?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음, 어렵군.


어쨌든 아이의 시 낭송을 들으면서 내가 하고 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이가 내게 선물로 준다길래 그 글을 다시 한번 읽어봤다.

다시 읽어봐도 재밌다.

나는 시 쓰는 건 쉽지 않던데, 이렇게 뚝딱 쓰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둘째 아들은 자기가 쓴 시를 병원에서 퇴원하고 우리 집에 계시는 어머님께도 보여드렸다.

아빠에게도 보여줬다.

다들 잘 썼다면서 얘기하니까 엄청 뿌듯한 표정이다.

다음엔 또 어떤 시를 써서 선물할지 궁금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병원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