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선, 면 다음은 마음> 제목을 보고 속으로 따라 읽으면서 '마음'이라는 단어에 물음표가 생겼어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보니 원래 그 자리인 양 어울리고, 왠지 시적인 느낌을 주더라고요. 저자는 어떤 사람인가 찾아봤더니 시인이에요. 아하! 그래서 저런 감각적인 단어를 사용했구나! 알았어요. 시인인 이현호 저자의 이 책은 마흔여섯 편의 산문 위주의 책이에요. 이 책의 부제는 '사물에 깃든 당신에 관하여'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해 저자만의 시선으로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냈어요.
“이 책은 사물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나와 동거하는 사물들이 주인공이다. 또한 늘 곁에 있지만, 곧잘 모른 체했던 마음에 관한 고백이기도 하다. 사물들은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었고, 그들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방에 숱한 사물이 있듯이 우리 안에도 각양각색의 마음이 산다. 어떤 마음은 손톱을 깎듯이 자주 잘라주어야 하고, 어떤 마음은 잊지 않도록 소중히 돌보아야 한다. 이를 악물고 끊어 내야만 하는 마음도 있다. 마음이 없는 사물들이 알려준 마음의 일이다. <점, 선, 면 다음은 마음>에 나오는 사물은 여느 집에나 있는 흔하디흔한 것이다. 흔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될 만큼 꼭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심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흔해 빠진, 그래서 각별한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P. 7, 9)
책은 총 4부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소제목들이 모두 하나의 사물과 관련되어 있어요. 도대체 어떤 사물에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상상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어요.
"집안일은 정말이지 반복의 연속이다. 지루한 일이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일들이 대부분 그렇다. 무언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원래 되풀이되는, 원래 그런 것들의 힘으로 삶을 이어간다.” (P. 28~29, 원래 그래 : 도마 중)
도마 위에 김치를 썰면서 저자는 생각을 확장해요. 도마는 온몸으로 칼날을 받아내고, 온갖 음식을 받아내요.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 솔직히 지겨운데, 반복되는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죠. 지겹다고 생각하지 말고 중요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그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에게 어떤 마음을 던지느냐에 따라 그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P. 35, 너의 이름은 : 쓰레기통 중)
사물뿐 아니라 사람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와요. 저는 지금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잠깐 생각해봤어요. 따스함과 차가움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겠죠. 되도록 따스한 시선이었으면 좋겠어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두 그릇. 그 안에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그릇은 달라진다. 안 좋은 생각이나 마음도 그렇다. 그때그때 설거지해야 한다. 성찰이라는 세제를 쓴다면 더욱 좋다. “(P. 82, 84, 그릇과 그릇 : 그릇 중)
밥과 국, 반찬 등을 온몸으로 품었다가 깨끗하게 비워내는 그릇을 보며 저자의 생각처럼 제 마음속 찌꺼기도 이런 식으로 깨끗하게 씻어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찌든 때가 아직 끼어있는 생각도 있을 텐데, 충분히 불렸다가 천천히라도 깨끗하게 씻어야겠어요.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듯이, 사람과 사람을 이으면 인연이 된다. 선과 선이 모이면 면이 되듯이, 인연과 인연이 모이면 세상이 된다. 수건들은 내게 점, 선, 면 다음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렇게나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인 하나의 점. 그것은 선과 면이 되었다가 마침내 면과 면이 만나 입체가 되어 부피를 갖는다. 부피는 곧 깊이다. 한 장의 수건, 아니 물기를 머금고 머금어 한 장의 바다가 된 수건."(P. 93, 점, 선, 면 다음은 마음 : 수건 중)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입체가 되면서 깊이를 가져요. 그 깊이는 내가 만들기 나름이겠죠. 나는 얼마만큼의 깊이를 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 책은 사물에 관한 이야기지만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저자처럼 사물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제게 이야기를 걸고 싶어 하는 사물도 눈에 띄었어요. 그동안 너무 바쁜 척해서 말을 걸 수 없었구나! 느꼈어요. 제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 책, 컵 등도 제게 재잘재잘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몰라요. 책은 자기 몸에 여러 알록달록한 옷을 입혀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 같고, 노트북은 잘 사용해줘서 뿌듯해하고, 물컵은 항상 자기만 이뻐해 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뽐내고 있는 것 같아요. 사물도 이럴진대 사람은 어떨까요. 나는 어떤 시선으로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나 생각해봤어요. 항상 같을 수는 없겠죠. 저라는 사람도 변해가고 주변도 시시각각 변해가니까요. 그 자리에 변함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요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저와 함께 있는 동안은 따스한 시선으로 따스한 인사 정도라도 건넬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