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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l 05. 2023

도를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요즘도 있을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길 좀 물어볼게요",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그런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붙잡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꽤 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나 왜 이런 사람들에게 잘 붙잡히지? 내 얼굴에 호구라고 쓰여 있나?


딱 서른이던 어느 날, 명동에 일이 있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두 명의 여자가 나에게 길을 물어봤다.

(그들은 항상 짝을 지어 다녔던 것 같다)

다행히 아는 길이어서 위치를 알려주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붙잡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조상, 인상, 미래 등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조금은 팔랑귀였다. 이게 좋다 그러면 그런가? 혹하는 마음의 상태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렸으니까.


그들에게 햄버거를 사주며 (왜 꼭 무엇을 사달라고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약간은 삐딱하게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말도 잘 믿는 나에게 약간의 삐딱함을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방패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난 그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주를 어느 정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내 마음의 허한 구석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날 아니면 안 된다고, 다행히 조상이 도왔다면서 제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장에 있는 돈의 잔액을 물어보는 거다.

다행히(?)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태여서 그중 일부만 뽑아서(항상 현금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것부터가 이상한 거였는데...) 그 사람들이 이야기한 곳으로 따라갔다.

당시 뭔가에 홀렸던 것이 틀림없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경계했을 일을 겁도 없이 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빌라였으나 들어가 보니 향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의식할 새도 없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무엇을 적으라고 해서 적고, 따라 절을 하고 음식도 좀 먹었나? 그러고는 밖으로 나왔다.

100일 정도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해서 100일 동안 드문드문 그곳에 갔다.

올 때 뭐라도 사 오면 정성이 더해져서 조상님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매번 빈손으로 가지도 않았다. 가끔 보면 나 말고도 젊은 사람들을 꽤 데리고 왔던 것 같은데,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겠지.

처음엔 별생각 없이 다녔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불편했다.

그 마음을 애써 누르며 다 나를 위한 것이다 생각하며 다녔다.


지금 이렇게 적고 보니 당시 나는 다른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잘 믿는 사람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뭐, 의심이 든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때라 그곳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했나 보다. 그들은 이런 나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고...

직장생활하면서 모은 피 같은 돈을 조금씩 쓰면서 그곳에 다녔다.

그들은 부모님,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직 정식으로 종교의 형태로 갖춰진 것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일 수 있다고... 내가 잘되는 것(?)을 막으려는 하나의 반대 세력(뭐라고 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정도 취급했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찜찜함이 조금씩 쌓였던 것 같다. 나는 비밀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다녀야 하는 곳이라는 것이 영 불편했다.


https://pin.it/rq9lBSb




그러던 어느 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들에 대해 검색해 보고, 그곳에서 시간을 꽤 보내고 지금은 나온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도 읽을 수 있었다. 뭔가 배신감이 몰려왔다. 순진한 젊은 사람들을 꼬여 그들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해 건물을 짓는데 돈이 들어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그런 건물도 알려줬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어찌 보면 그들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기에 계속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자기 신념이 그렇게 향했을 수도 있지만...

가끔 그들을 보며 신기했다. 어쩌면 저렇게 강한 신념을 가지고 힘들어 보이는 길을 겪고 있을까.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잘 사는 것 같은데, 아래에서 포교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삶은 힘들어 보였다.

항상 피곤해 보이고 삶에 찌들어 보이는데, 나중에 선택받기 위해 지금 이런 고생(그들은 고생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던 거 같지만, 내가 보기엔 100% 고생이었다)을 하는 것이라는 그들을 보며 짠하기도 했다.

부모님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실까, 대부분 본인이 이런 일을 하는 덕분에 집안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음... 그것을 어떻게 믿지? 그냥 그럴 시기가 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나. 그냥 우연이 몇 번 겹쳐서 필연처럼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의문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연락을 끊고 그들의 연락처도 다 삭제하고 차단해 버렸다.

그제야 내 마음속에 갑갑하게 얹혀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인생은 내가 믿는 대로 흘러갈 수 있는데, 나는 왜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을까?

그것도 검증되지도 않은 것에 기대어 내 인생을 타인에게 온전히 맡겨버릴 뻔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그들에게 끌려다녔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암담하다.

한 사람의 생각과 신념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인 것에 왜 그렇게 사람들은 열광하고 빠져드는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버릴 만큼 그게 그렇게 대단할까?


나는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팔랑귀를 접었다. (여전히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이는 경우도 있지만, 당장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 (이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를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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