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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Sep 03. 2023

'행복의 기원'을 읽고...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어떤가요? 사전에서 찾아본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기에 경쾌하고 가벼울 것만 같아요. 그런데 제게 행복이 지닌 무게는 제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속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앉은 것처럼 마냥 가볍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아마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현재의 행복을 가벼이 여겨서 그럴지도 몰라요.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길래 행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처럼 여겨지는 것일까요?


최근 몇 권의 책을 읽는데 서은국 저자의 '행복의 기원' 책 인용이 많이 되는 것을 봤어요.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쓰인 책은 많지만,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책은 읽어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라고 적혀 있는 말도 궁금했어요. 진화와 행복을 연관 짓는다고? 그게 가능할까? 물음을 띠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저자는 '행복'을 소재로 한 다른 책들과 이 책의 다른 점으로 세 가지를 꼽아요. 

첫째, 다른 책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 즉 'how'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이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은 역할은 무엇일까?' 같은 'why'에 관심을 둬요. 

둘째, 이 책은 행복의 이성적인 면보다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면에 관심을 둬요. 

셋째, 행복에 대한 통상적인 사고의 틀(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등)에서 벗어나고자 했어요. 즉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라는 관점이죠.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지난 30년간 행복 연구 결과들을 재구성한 결과,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해요.




무의식적이고 동물적인 우리의 '본능' vs 의식적이고 합리적이고자 하는 '이성' 사이에서 우리는 끝없이 줄다리기하고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하면서부터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행복을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봤어요이 철학적 관점은 2천 년간 쭉 이어져요. 그렇기에 수많은 책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아라' '가진 것에 만족해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을 해요. 즉 내가 가진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해요. 그런데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기 어려워요. 왜 그럴까요?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에요.


최근 심리학계를 뒤흔든 연구들의 공통점은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다'예요. 인간이 우주의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에 지동설이 한 방을 날렸다면, 여기에 KO 펀치를 날린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에요.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에요.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그의 본질적인 목적(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위해 창의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봐요.


그렇다면 인간은 왜, 또 무엇을 위해 행복감을 느낄까요? 저자는 간결하게 "생존 그리고 번식"이라고 답해요. 새우깡이 개를 서핑하게 만들 듯이 우리도 어떤 보상이 있어야 사냥과 짝짓기 같은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해요. 쾌감(행복감)이 바로 우리 뇌가 고안한 보상이에요.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가져도 인간은 곧 적응하기에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되어 버려요.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이 행복의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로 저자가 꼽은 이유예요.



P. 67. 서핑하는 개,    P. 83.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전화주세요. 외로운 제프' 쪽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전화주세요. 외로운 제프' 이 쪽지 하나에 7만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왜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요? 바로 생존 때문이에요.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지난 30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이 알려졌어요. 저자는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하면서 두 가지 결론을 내려요.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라고 해요.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으로,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요. 그렇다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타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할까요? 그것은 싫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라고 해요. 사람은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되었어요.


개인의 행복 수준은 외향성 같은 성격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문화도 추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인데, 이는 심리적 자유감을 줘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사는 것! 반면 한국, 일본,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행복 부진' 국가들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기에 외적인 것에 집착해요. 그렇기에 이 제일 행복감을 주는 것이라고 착각해요. 자유감의 부족과 과도한 물질주의 등의 원인이 너무 예민한 타인 의식이기에,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보는 것에 익숙해지자고 해요. 저자는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고 해요.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에요. 인간은 쾌감을 다양한 곳에서 느끼는데,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고 해요.


P. 191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P. 192)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어요. 저는 지금까지 저자처럼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철학자들처럼 'how'에 집중했지 'why'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겉만 핥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행복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고 처음엔 '에이, 설마, 인간은 이성적 동물인데?' 생각했다가 책을 읽으면서 수긍이 갔어요. 인간이란 종도 진화를 거쳐 세상에 더 잘 적응하는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에 '아... 그럼 나는 어떡하지? 내향성이라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 쉽지 않은데...' 조금 좌절하기도 했지만, 인간관계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내게 소중한 인연을 더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 최근 꽤 많이 들렸는데 과학적으로 옳은 말이었네요. 한 방을 노리기보다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더 잘 느껴야겠어요. 저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고 말이죠.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구하려고 하는지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어요. 무겁게만 느껴졌던 행복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해주는 책이라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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