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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Dec 27. 2023

나의 '의지'로 달라지는 우리 집 식단


한때 요리를 포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에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두 아들 이유식을 직접 해서 먹일 정도로 처음엔 의욕적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내 수고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고 무엇보다 할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를 위로하며 시간을 들여 음식을 준비했지만, 어느 순간 이건 내가 가진 재능이 아닌데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노력 대비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열심히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어 슬며시 놓기 시작했다.

반찬 가게, 냉동식품, 배달 음식 등을 가끔 이용하던 중에 정기적으로 반찬을 시켜 먹는 것은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잡는 7대 3의 법칙 채소·과일식'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 읽었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지금 하는 식습관은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평소에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잘 먹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나마 챙겨줬지만 내가 잘 먹지 않으니 매일 챙겨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몸에 독소가 최소한으로 생기면서 배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채소·과일식이란다.

아... 채소·과일식을 얼마나 하고 있나 생각해봤는데... 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단일 곡물과 가공식품들 섭취로 각종 질병이 생기기 시작했다면서 그런 음식들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가공식품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편하고 맛있어서 많이 이용했는데...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도 나지만 한창 자라고 있는 두 아들에게 나는 어떤 음식을 먹이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되든 안되든 조금씩이라도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일단 과일을 샀다. 한 가지만 사면 질릴 수 있으니 2~3가지 종류를 사서 골고루 담았다.

아침 먹기 전에 과일을 먼저 먹는 습관을 들이고자 아이들과 남편은 과일 먼저 먹게 했다.

나는 간헐적 단식으로 아침을 먹지 않으니 점심 먹기 전 11시 정도에 과일 먼저 먹었다.

과일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2달 후부터인가 피부가 조금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한다.

과일은 뭐 파는 것 사면 되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반찬이 문제였다.

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찾아보니 음식 관련 앱, 유튜브 영상 등이 많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지.

하나의 사이트를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레시피를 보며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골라서 하나씩 따라 했다.

처음엔 하나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조금 지나니 한꺼번에 2~3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 맛도 그럴듯하게 났다! 

2시간 정도 투자하면 어느 정도 한 상이 차려졌다. 그것으로 한 끼를 먹기도 하고 몇 끼를 먹기도 했다.



나의 노력으로 완성된 우리집 식단



하지만 항상 이렇게 시간을 들이며 음식을 차릴 수는 없었다.

음식을 하는 동안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하지만,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재료 준비부터 음식하고 설거지하고 식탁을 차리기까지 2~3시간이 걸리다 보니 막상 나는 너무 힘들어 제대로 먹지 못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우걱우걱 많이 먹기도 했다.

컨디션도 항상 좋지는 않아서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아주 간단하게 먹는다.

볶음밥, 달걀간장밥, 주먹밥, 밥에 김가루 뿌려서 ㅎㅎㅎ 아주 단촐하다.

반찬 가짓수가 극과 극을 달리지만 뭐, 어쩌겠는가.


감기가 심하게 걸렸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남편에게 부탁한다.

남편은 싫다는 소리 하나 하지 않고 무엇을 할까 즐겁게 고민한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지 않은 음식 조합을 이야기하며 신나 한다.

남편은 그냥 음식을 하는 것보다 퓨전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라면달걀찜, 오이 튀김, 집에 있는 재료 거의 다 넣어서 볶음밥 하기, 자기 마음대로 양념해서 돼지고기 구이 하기 등.

의외로 맛있어서 놀란 것도 있지만, 윽~ 이러며 못 먹겠다고 얘기한 것도 있다.


이렇게 남편이 가끔 해줘도 결국 우리 집 식단은 나의 '의지'로 달라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게 어떨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나도 누가 차려주는 음식 정말 잘 먹는데 말이다.

하지만 자기 전에 다음날 어떤 반찬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잠드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며 어떤 재료들이 있나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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