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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Oct 15. 2021

실개천 따라 타박타박 가을길 너머, 완주 화암사

가을 여행지로 꼽은 곳은 전라북도 완주 화암사다. 처음에는 완주인지 원주인지 헷갈렸다. 가고 싶은 절을 을 때 화암사인지 화엄사인지 한번 더 헷갈렸다. 완주는 낯선 곳, 달리 말하면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은 보물같은 여행지고 화암사는 숨겨두고 울적할 때 찾고싶은 절이다. 감추 보물을 찾듯 전북 완주의 구석구석을 발길 닿은 대로 여행하였다.

첫번째 보물은 가을을 막 시작하는 숲 속에서 발견한 사찰이다. 청량한 숲에서 참선의 길을 걷는 은거자의 고아함이 있는 절, 화암사가 실개천 물소리와 함께 발길을 붙잡는다.


화암사 가는 오솔길, 계단 참에 쓰인 글귀가 어찌 이리 신통방통하게 내 마음을 나 싶다.


...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잘 늙은 절, 화암사 중에서/안도현(시인)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그래서 으리으리하다 싶을 정도로 번듯한데도 새로운 건물을 올리느라 천막이 세워져 있고 공사장 소리가 시끄러운 그런 절들을 꽤 많이 보았다. 유명세만큼 볼거리가 있다하여도 그곳에서 마음을 달래지는 못했다.

전북 완주의 숨겨진 절, 화암사는 그런 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때묻지 않았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가는 길, 경내에 들어서서 느끼는 고요함에 성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마음자리를 들여다보게 다.


차 몇 대 세우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산 중턱 공터에 차를 세운다. 화암사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는 순간 일상과의 급격한 단절을 경험한다. 길 위에는 떨어진 낙엽이 뒹굴고 숲길은 호젓하다. 타박타박 걷는 내 발소리에 화음을 맞추듯 졸졸 물소리가 따라붙는다. 화암사까지 가는 길은 아주 편하지는 않다. 같이 걷던 이의 구두 비슷한 신발이 말썽을 부린 것을 보면 만만히 볼 길은 아니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30여분 비밀의 숲길을 걸었다. 아득한 돌계단 위에 누각이 서있다. 화려한 단청 없이 세월의 풍상에 닳아진 듯한 누각, 우화루는 광해군 3년(1611)에 처음 지어진 후 약간의 보수가 있었지만 원형을 잘 보전하고 있다. '우화루'는 꽃비가 내리는 누각이라는 의미다. 주변에 꽃나무가 많았다는데 꽃비속에 서 있을 누각을 상상하니 더 짙은 감상에 젖는다.


우화루를 올라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극락전이다. 아미타삼존여래좌상을 신 극락전은 국보 제316호다. 국내 유일의 하앙식(下昻式)구조 목조 건물이다. 극락전 지붕을 올려다보면 일반 처마보다 훨씬 길게 처마가 나와있다.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건축 방식이다. 요사채인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숲 속 고요한 사찰을 음미한다. 앞서 가던 부부는 극락전에 들어가 예불을 하고 있다.


잠시 나의 시간이 멈추었다. 오랫동안 시간이 멈춘 듯한 절은 나의 시간에 대한 아둥바둥을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이다. 느리게 가도 좋다는 위로를 전하는 절, 화암사는 숲 속에서 찾아낸 진주라는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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