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책의 계절이다. 요즘은 종이 활자보다는 휴대폰 화면이나 노트북으로 읽는 책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래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 한 권을 찬찬히 읽어갈 수 있다면 가을이 훨씬 멋스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책박물관 한 귀퉁이에서 발견한 노신사의 책 읽는 모습은 가을과 딱 어울렸다. 훗날 나도 저 모습으로 책방을 찾을 수 있었으면...
"삼례는 책이다"를 표방하는 완주군 삼례 마을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솔솔 문화의 향기가 밀려든다. 문화마을인 삼례마을의 주축은 삼례책마을, 삼례문화예술촌, 그림책박물관이다. 책마을의 시작은 1983년부터 시작한 고서점이 영월을 거쳐 2013년 이곳 삼례 마을에 안착을 하면서부터다.
책마을은 2층으로 된 나지막한 건물과 단층 건물이 주르르 이어져있다. 먼저 2층짜리 건물로 향한다. 책박물관 부설 서점인 고서점 호산방과 절판도서 10여만 권을 보유하고 있는 책마을 헌책방에서 오래된 책의 향기에 감싸인다. 1층 카페는 야외로 문이 활짝 열려있다. 가을볕이 사선으로 내리쬐는 실내에서 외부의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독서 삼매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요즘, 책의 존재가치가 옅어졌다 해도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묵직한 감정은 SNS로 접하는 것과는 그 무게에서 차이가 있다.
헌책방 옆에서는 기획전시장이 두 곳 마련되어 있다. 기획전시관은 입장료(2,000원)를 내고 입장한다. 규모는 작지만 그 안의 전시물은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현재 진행준인 기획전시는 "문자의 바다 - 파피루스부터 타자기까지"전이다.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부터 파피루스, 골각문자와 인디언이 돌에 새긴 암각문자까지 인류 문자의 역사가 작은 전시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대 박물관 전시관에서는 내가 무엇을 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전시물에 치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작은 전시관은 집중도를 훨씬 높인다. 하나하나 전시물을 살피고 내용을 읽어보며 인간 문명의 태동을 보는 것과 같은 경이를 느끼면서 작은 전시관을 속속들이 둘러본다. 내내 호기심이 일고 관심을 유지할 수 있으니 작지만 참으로 알찬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박물관은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책 3대 거장"전과 "요정과 마법의 숲"전을 열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가을 문화의 향기를 좀 더 맡고 싶다면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향해보자. 길을 건너고 고풍스러운 성당을 지나 예술촌에 들어서면 독특한 느낌을 받는다. 일제 강점기 때 주변 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던 양곡창고의 외형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다.
두꺼비를 모티브로 한 조각들이 많이 보이고 곳곳에 포토존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창고 곳곳은 기획전시실, 또는 상설전시실로 이용된다. 예술촌 곳곳은 해묵은 것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그 이면에 담긴 역사를 잊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문화를 세운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전북 완주 삼례마을은 가을 여행의 쉼표를 찍어주듯 여유롭고 편안한 여행지다. 특히 어린아이와 함께라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