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을 걷듯 섬 길을 걷다, 굴업도

섬과 여행

by 파란리본 황정희


섬이 주는 그리움과 낭만을 온전히 품은 섬, 굴업도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도 선명하게 걸려있는 꿈결 같은 섬이다. 해변 가를 걷는 발자국은 나와 일행들의 것뿐이다. 섬 자락 어느 곳을 가더라도 찬미하지 않을 수 없는 풍광이 열린다. 여름철 환상처럼 다가왔다 사라진 그 섬에 가을의 꿈을 위해 다시 가고 싶다.

HJH_6394.jpg 개머리언덕, 누가 이곳을 서해의 작은 섬이라 할 것인가.

굴업도는 쉬이 갈 수 있는 섬은 아니다. 인천항에서 90km거리에 있어 그리 멀지 않은데 한 번에 가는 배는 없다. 인천항에서 덕적도까지 1시간 10분, 다른 선착장으로 이동해 나래호를 타고 굴업도까지 1시간에서 2시간 30분까지 걸린다.

왜 덕적도에서 굴업도 가는 배시간이 빨fot줄처럼 늘어나는지 의문일 것이다. 섬 주민들에게 형평성 있게 배 운항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홀수 날에는 덕적도에서 문갑도 들렀다 바로 굴업도를 가는데 반해 짝수 날에는 문갑도, 지도, 울도, 백아도를 거쳐 굴업도에 들어간다. 때문에 홀수 날에는 1시간10분, 짝수 날에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굴업도에서 나오는 배는 반대다. 홀수 날에 들어갔다 짝수 날에 나온다면 배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린다는 얘기다.

HJH_5012.jpg 때아닌 유람선에서 여유자적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들 어떠하리. 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기만 하다.

여행 일정을 짜다보면 어쩔 수 없이 홀수 날에 굴업도에 들어가야만 할 때가 있다. 특히 주말배편은 한 달 전에 예약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가 딱 그 경우다. 아뿔싸인가? 여기에 반전이 있다. 섬 하나하나 들를 때마다 주변 섬들의 다채로움을 구경하는 묘미가 쏠쏠하다. 짭조름한 바다 향을 들이키며 유람선에 탄 듯 여유를 부린다. 섬에 도착해 내리는 사람들, 그들을 마중 나온 이들, 섬이 살짝 들썩이는 느낌에 이렇게 이들도 살아가는 구나싶다.

HJH_5604.jpg 연평산에 오르는 길, 고운 모래가 길게 이어지는 해변 너머 개머리언덕이 보인다.

섬과 갈매기를 눈으로 쫒으며 바닷바람을 느끼다보니 어느새 굴업도선착장이다. 굴업도는 멀리서 보면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면적 1.7k㎡, 해안선 길이는 13.9km다. 크기로는 여의도 면적의 1/5인 작은 섬이다. 면적에 비해 해안선이 긴 것은 리아스식으로 해안선의 들고남이 심한 때문이다. 해안절벽, 산, 사구, 모래사장, 언덕의 독특한 절경을 한꺼번에 갖고 있는 말 그대로 천혜의 섬이다.

이는 남북방향으로 위치한 굴업도에 부는 서해의 바람이 주요 원인이다. 서쪽은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 건조하고 파도가 세다. 파도에 의해 무너져 내린 절벽을 따라 해안절경이 펼쳐진다. 반면 동쪽은 습하고, 소금기가 많다. 동쪽 해안 아래에는 80~90m의 해저골짜기가 있어 서쪽에 비해 찬 조류를 형성하는 것도 요인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습기와 소금에 의한 부식이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동쪽에는 푸석해진 바위와 사구, 고운 모래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HJH_5621.jpg 굴업도에는 유난히 소사나무가 많다. 뿌리를 드러내었으나 꿋꿋하다.

연평산(128m)과 덕물산(138m)이 있는 동섬과 개머리언덕이 있는 서섬의 섬세가 다르다. 서로 다른 지형은 전망대 역할을 하는 산에 올라 확인할 수 있다. 연평산, 덕물산 모두 비고가 낮다하여 쉬이 볼 산은 아니다. 연평산은 정상 부근이 바위 절벽이라 몇 군데는 줄을 잡고 올라야만 한다. 덕물산도 만만치 않다. 등산로가 돌과 모래흙이라 아주 미끄럽다. 발바닥에 힘을 주고 밟아야할 곳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산행시간은 30분 정도로 짧다. 산 정상에 서서 섬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은 말할 나위 없이 시원하다.

덕물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긴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목기미해변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길이 없는 언덕을 미끄러져갔다. 돌이 섞인 모래흙이 푹신 거려 경사가 있는데도 쉽게 내려가진다. 물이 빠지고 있는 해변을 따라 파도가 그림을 그린다. 파도소리 벗 삼아 모래사장을 걸으며 한없는 자유를 느낀다. 이 넓은 해변에 사람이 없다.

그나마 사람이 보이는 곳은 민박집과 펜션 앞에 있는 큰말해변이다. 이곳에 모시조개가 많다. 호미를 들고 모시조개를 채취하러 간다. 동네분이 일러주는 방법대로 모래사장의 살짝 들어간 곳을 파보니 초반에는 대부분 허탕이다. 시간이 지나고 감을 잡으니 파는 족족 모시조개가 나온다. 저녁메뉴는 야외 바비큐와 조개탕이다.

HJH_6272-1.jpg 큰말해변에서 잡은 모시조개, 청향고추와 대파 넣고 소금 솔솔 뿌려 끓인 조개탕이 끝내준다.

날씨가 좋으면 개머리언덕으로 가서 별보기를 하면 근사하단다. 펜션 야외 탁자에 옆방 손님들, 동네 분들 그리고 우리까지 세 팀이 어우러져 밤을 즐긴다. 통기타 소리에 굴업도의 밤은 깊어갔고 별보기는 날아갔다. 사실 조개 캐기는 새벽녘이 좋다. 사람 발자국이 없는 해변에서 조개 캐는 맛이란. 아침메뉴도 조개탕이다.

아침 식사 후 백패킹의 성지라고 불리는 굴업도 개머리언덕을 향한다. 큰말해변 우측의 펜스를 통과하여 약간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드넓은 평원처럼 보이는 낮은 구릉이 울렁울렁 이어진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라는 탄성이 터진다. 이르게 핀 수크령이 가을날 이곳 풍경을 그려보게 한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섬 끝자락까지 쉬엄쉬엄 걷는다. 이곳에서 찍는 사진은 다 화보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저절로 터지는 감탄사를 주워 담기도 바쁘다. 가슴 사이를 툭 밀치고 나오는 소리는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이다, 나의 살아있음과 이 자연의 살아있음에 대한 물밀 듯이 밀려드는 감동이다.

HJH_6380.jpg 이른 수크령 너머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그저 쉼만이 있을 뿐이다.

연평산, 덕물산, 목기미해변, 큰말해변 그리고 백패킹의 천국이라는 개머리언덕... 그 어느 곳 하나 눈과 마음이 호강하지 않는 곳이 없다. 굴업도에는 현재 8가구가 산다. 단 한가구만 빼고 CJ에 이미 땅을 판 상태라고 한다. 언제 개발이 될지 모르는 대부분이 사유지라는 소리다. 이런 천혜의 비경이 특정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 이곳을 올 수 없을 지도 모른 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1박 2일의 일정이 너무 짧다. 코끼리바위도 못 보았고 물이 덜 빠져서 해식애가 발달했다는 토끼섬에도 못 갔다. 조개 캐기도 더 하고 싶다. 개머리언덕에서 밤하늘에 뜬 별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해돋이와 해넘이도 제대로 못하였다. 자그마한 섬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 섬의 가을을 꼭 다시 보고 싶다.

HJH_6138.jpg 큰말해변의 아침, 지난 밤 너무나 분위기에 취해 일출을 놓쳤다. 아침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은 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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