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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Oct 22. 2019

은빛 억새가 춤춘다 "따라비"

제주 오름이야기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그곳에 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이미지가 선연하여 안달이 날 정도다. 은빛으로 비늘조각들이 반짝거리고 억새의 반짝임이 능선을 따라 굽이치고 흐르는 물결을 만드는 계절이 가장 아름다운 오름, 따라비다. 오름 곳곳에 자라는 억새는 따라비(땅할아버지)의 은빛수염이 아닐까? 가을에 꼭 가봐야할 오름이다.

    

성읍리를 지나 따라비에 간다. 봄날에 양옆에 유채로 노란 띠를 만드는 정석항공관 앞 도로인 녹산로를 지난다. 가시리사거리까지 가서 성읍민속마을 쪽으로 좌회전 하자마자 좌측의 첫 번째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2.8km정도 달리면 오름 기슭에 도착한다. 이곳이 따라비오름의 입구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쉽지 않다. 

 

억새오름이라는데 가을을 맞아 색이 진해진 숲만 보인다. 한 사면을 채울 듯이 나무가 울창하여 과연 억새오름이 맞나 갸우뚱이다. 예전에는 목장을 지나고 억새밭을 건너 따라비에 갔더랬다. 크고 작은 굼부리가 양옆으로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오름의 형태를 바라보며 안겨들듯이 오름에 올랐었는데... 이곳이 대록산쪽에서 접근하면 그런 풍경을 만날 수 있기는 하나 그곳은 사유지이므로 주차가 마땅치 않다. 걷기가 일상이 이라면 쫄븐갑마장길 따라 대록산과 따라비를 연결하는 길을 걸어도 좋다.

 숲이 시작되기 전 초입에 꽤 넓은 억새밭이 있어 따라비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다. 억새가 햇빛에 부서지며 오랫만에 찾은 가을 오름길을 안내한다.

나무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숲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쉽 없이 오르막이다. 내려오는 젊은 연인에게 얼마나 이 계단이 계속되느냐고 물으니 금방이란다. 금방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10분여를 숨가쁘게 올랐으니 입구부터 분화구 가장자리에 이르기까지 30분은 걸린 것 같다. 계단이 끝나고 세상이 확 열린다. 등허리를 타고 흘렀던 땀방울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린다. 제주도가 이런 곳이다. 오름에 올라야 참다운 제주를 만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은 이곳 따라비오름에서 더 힘을 얻는다.  

따라비오름은 주변에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을 거느린 오름 할아버지 오름이다. 오름 이름에 대한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다. 모지오름과 빗대어 시아버지와 며느리 형국이라 하여 '따하래비'라고 불렀다고도 하며 따라비가 주변 오름을 거느린 땅할아버지에서 온것이 아닌가 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땅하래비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우겨본다. 창조신과도 같은 한라산을 따라 동부 오름군락을 거느린 할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인다. 따라비 훈장 앞에 모여 앉은 크고 작은 학동들의 하늘천 따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따라비오름은 하나의 굼부리가 아니라 좌우 양옆까지 모두 3개의 굼부리로 이루어져있고 봉우리만 6개에 이르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말굽처럼 한쪽이 터진 굼부리와 원형의 굼부리가 맞닿으며 이어져 있어 굽이굽이 능선 따라 걷는 맛이 쏠쏠하다.

일몰 시간이 30여분이나 남았기에 여유를 부리다 방향상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라산 너머로 사라짐을 깨닫고는 부리나케 가장 높은 봉우리로 뛰다시피 올라갔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여 한라산 너머로 사라지는 해의 꽁무니를 배웅하였다. 해가 넘어간 뒤 짧은 순간에 오름의 형태가 입체적으로 변한다. 선명해진 오름과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그 아래에는 은빛파도가 친다. 

억새는 빛의 방향과 시간에 따라 시각적 차이가 크다. 가장 근사한 때는 해가 질 무렵이다. 오름 오르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늦어도 일몰 한시간 전부터 오름산행을 시작해야한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그림자는 길어지고 햇빛은 억새와 키를 맞춘다. 해가 점점 내려와 억새 너머로 햇살이 부서질 때면 은빛 억새가 황금색으로 변한다. 가을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따라비는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어느 계절에 와도 멋스럽지만 가을이 가장 황홀하고 어느 시간에 올라도 좋지만 해질 무렵이 가장 찬란하다.


▶ 찾아가는 방법 : 제동목장을 거쳐 가시리로 내려와서 성읍리와 서귀포방향을 표시한 표지판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성읍리 방향으로 약 120여m쯤 가면 왼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이 있는데 바로 그 길을 따라 2.8km 정도 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오름이 따라비 오름이다. 정상까지는 30분정도 소요된다. 

▶ 주변 맛집

가시식당 : 064-787-1035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로565번길 24 (★★★★)

메뉴 : 두루치기(7,000원), 순대국밥(7,000원), 수육(15,000원)

예전부터 오름 오르미들이 성읍 주변의 오름을 오를 때 주로 이용하였던 식당이다.  제주식 두루치기는 돼지고기 콩나물 등 야치를 넣어 볶아 먹는다. 고기와 야채를 상추에 올리고 멜젓을 콕 찍어 싸 먹으면 맛있다. 


나목도식당 : 064-787-1202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로613번길 60 (★★★)

메뉴 : 삽겹살(12,000원), 순대국수(5,000원)

가시식당 옆에 있는 제주산 돼지고기 집이다. 허름했던 집에서 장사가 잘 되서 2층으로 건물을 올렸다. 2층에 무인카페가 있어서 식사후에 차 한잔을 즐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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