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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Jan 06. 2020

영월의 소소한 맛거리, 메밀전병과 감자밥

단종을 기억하는 강원도 여행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어린 이의 죽음은 특히 가슴을 애닲게 한다. 어른에 의해 보호받지 못했던 17세 단종이 마지막을 보냈던 영월로 겨울 여행을 떠난다. 청령포와 관풍헌, 장릉으로 이어진 단종의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 욕망의 무자비함과 채 피어나지 못한 청춘을 마주하는 마음은 겨울을 더욱 시리게 만든다.


12세에 왕위에 올라 17세에 숨을 거둔 단종(端宗 1441~1457)의 짧은 생애,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은 지 1년 반 만에 수양대군과 한명회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그를 모시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으로 내몰렸다. 어린 소년왕은 스스로 왕위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1456년(세조 2) 수 백 명이 죽어나갔던 사육신 사건이 후 얼마 후에 어린 소년은 제 삼촌인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는다. 1457년 10월의 일이다.    

     

청령포의 아침

영월 첫 여행지는 이른 아침의 청령포다. 눈은 오지 않으나 스산한 겨울바람이 부는 청령포를 따라 회색빛 옅은 안개가 외진 땅을 감싸고 있다. 600년 된 관음송(觀音松)만이 그때를 기억하는 듯 처연하다. 어린 노산군이 이 소나무에 앉아 한을 토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한다. 그것을 보고 듣고 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관음송과  소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은 흘러간 세월의 풍상에 아픔을 차곡차곡 갈무리한 듯 무게감이 느껴진다. 뒤로는 넘을 수 없는 절벽 산이, 양옆과 앞으로는 시퍼런 강물이 휘돌아 흐른다. 이곳에서 눈물지었을 어린 임금의 심정은 얼마나 막막하였을까.      

    

앞으로 강이 뒤로는 험준한 산이 자리한 청령포
관풍헌 자규류

단종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영월의 관아인 관풍헌이다. 홍수가 나 청룡포에서 관풍헌으로 옮긴 뒤 두 달 여 만에 세조가 보낸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단종은 죽음 뒤에도 편치 않았다. 세조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명을 내렸고 후환이 두려운 사람들은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의 죽음을 배웅해준 단 한 사람은 엄흥도였다. 향리의 우두머리였던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들쳐 메고 산으로 올라가서 그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한때나마 왕이었던 이의 죽음이 이리도 초라할 수 있을까. 80여 년 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던 그의 묘는 중종 33년(1538) 영월부사로 부임한 박충헌이 꿈에서 단종을 만난 뒤 노산묘를 찾아 봉분을 정비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묘호가 단종으로, 능호가 장릉이라 부르게 된 것은 숙종 24년(1698)에 이르러서다.         

능으로 가는 길
장릉
능에서 내려다본 정자각

능은 보통의 왕릉과 달리 가파른 능선 위에 있다. 단종의 시신을 몰래 산중에 묻어야만 했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능하다. 능으로 가는 길에 서있는 소나무는 능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듯하다. 무인석, 병풍석, 난간석은 없고 문인석만 있는 단출한 느낌에 생을 다하지 못한 왕의 모습을 보는 듯 쓸쓸함이 감돈다. 능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와 홍살문을 지나 90도로 완전히 꺾인 우측 끝에 정자각이 위치하고 있다. 홍살문 바로 옆에는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종친․시종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가 보이고 그 곁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그나마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제사 때 썼던 우물인 ‘영천’을 지나 정자각에 서면 겨우 봉분 위만 슬쩍 보이는 능이 애달프다.

가벼운 눈이 내리는 날의 장릉 정자각
영천

능 주변의 드넓게 자리한 소나무 숲은 호젓하여 걸을 만하다. 장릉을 돌아 나오는 길에 단종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던 엄흥도를 기린 엄홍도정려각을 유심히 바라본다. 싸라기눈이 가볍게 뿌리는 길을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장릉

장릉보리밥집 033-374-3986 (★★★★)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101-1

매일 11:30 ~ 18:00        

보리밥 8,000원, 감자 메밀부침 5,000원

장릉 주변 맛집으로 말린 옥수수와 소품을 아기자기하게 놓아두었고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 갖는 정겨움이 있다. 방에 앉아 보리밥을 주문하면 얄팍하게 부친 메밀부침이 먼저 나오는데 함께 나오는 열무김치와 잘 어울린다. 큼지막한 감자가 들어간 감자밥과 짜지 않은 갖가지 반찬의 조화가 꽤 많은 양의 밥을 싹싹 비우게 한다. 반은 비벼먹고, 반은 반찬을 맛보며 깔끔하게 먹는 것도 좋다.


미소네맛집 010-6218-5687(딸 : 010-5017-5279-주문문자나 톡) (★★★★★)

영월군 영월읍 제방안길 16-1

영업시간 : 09:00 – 19:00    

메밀전병과 배추전 각각 1000원씩, 전화주문시 1500원

메밀전병은 메밀가루를 아주 묽게 반죽해 얇게 펴서 무, 배추, 고기 등을 넣고 말아서 지진 음식이다. 예전에는 좁은 골목길에 이곳저곳 자리했던 전병 집이 영월 중앙시장 건물 안에 쪼르르 모여 있다. 메밀전병이라도 강원도 지역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다른데 영월은 매콤한 맛이 강하다. 그중에서 미소네맛집을 추천한다. 메밀전병 안에 야채가 촘촘하고 맛이 제대로다. 살짝 절여 지진 배추전과 함께 먹으면 매콤과 심심함이 어우러져 별미다. 주인 할머니께서 인터넷을 못해 인터넷 주문은 불가하고 전화 주문 만 가능하다. 다른 집이 엄청나게 많은 양을 지지고 있는 것과는 동떨어진 혼자만 시골 장에 앉아계시는 듯한 느낌이다. 직접 가서 사면 한 개에 1000원이다. 1시간여를 기다려 포장을 해가지고 온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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