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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e Oct 17. 2022

마음의 노화 따위

떨림의 농도


잘못 잤는지 어깨가 뻐근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의 일이 아닌 것도 같다. 헤아려보니 쇳소리라도 날 듯 뻑뻑한 어깨로 아침을 맞은 지 벌써 삼일째라는 것을 깨달았다. 덩치가 작은 그 사람은 자는 동안의 동선이 크다. 그에 비해 난 크게 움직이지는 않는데, 자리를 내어주다 보면 왠지 구석에 처박히듯 구겨져 자다가 깰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그런 날이 지난 후였던가 보다.

그렇지만 어째서 여태? 라고 질문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다. 몸이 여기저기 낡고 있어, 때 되면 기름칠해 주고, 갈아주고, 가꿔주어야만 한다. 한 여름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하루 신었다가 발등에 난 상처도 아직 꽤나 선명히 남아 있다.


이런저런 공격들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한 수비 태세가 조금은 갖추어져 있다고 느낄 땐, 그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안도하고 만다.

오래 바라보고 좋아하는 감정을 인정하는 편이라, 나쁜 인간을 연인으로 삼아 본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상처받게 되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곳에 늘 있어왔다. 감정의 격차에서 오는 것이 아닌 방식의 차이로 생기는 작은 갈등의 생채기들.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뜨겁게 데워졌다 차게 식었다 하는 감정들은 다루기가 어렵다. 그런 감정들은 나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대가 곤란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사랑을 놓아버리는 내가 상처를 받거나 했다. 그럴 의지가 없는데도,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무언갈 내려놓아야 하는 일은 참 아픈 일이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 오듯, 긴 사랑의 상처가 아물어, 간질거리기 시작하면, 나의 젊은 마음은 잘도 다음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오뚝이처럼. 여기저기에 굳어 자리 잡은 상흔들에도 익숙해졌다.

어쩌면 불행하게도, 모든 것이 리셋reset 되어 주지는 않았다. 한 번의, 또 다음의 연애들을 지나 보내며 덜 주고 덜 갖는 방법을 택했다. 마음이든, 정성이든, 그리고 어쩌면 기대 같은 것들도. 내 것을 조금 덜 주면 받게 되는 상처도 덜어지는 거라고, 여전히 조금은 믿고 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집중해 책을 읽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럼 이내 눈이 마주치고 만다. 연애 초, 서로 할 일이 있어 함께 갔던 카페에서, 잔뜩 집중해 일만 하던 그에게 나오는 길에 투정 부리듯 한 마딜 했었다.

- 카페에 같이 와서 일하는 거, 재미없다. 다음부턴 같이 안 올래.

- 왜 그래-?

- 앞에 앉아 있어도, 나는, 보고 싶어 져서 자꾸 흘끗거리게 되는데, 눈길을 한 번 안주네- 외로웠어. 당신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그 후론 줄곧 이렇다. 언제든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면, 곧 그 사람도 나를 바라본다. 내 시선을 느끼면 반드시 나와 눈 마주치고 미소 지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이제와 보니 말로 하기 어려운 서운함은 없다. 그런 감정의 덩어리들을 내어 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거나, 자존심처럼 의미 없는 것들이 말문을 막았겠지. 어쩌면 나이 먹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행운 같은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적절한 농도와 온도로 말할 줄 알게 된 내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 하고 배려할 줄 아는 이 사람을 만나, 이렇게 충만하게 가득한 우리가 되었다. 거칠게 굳은 상처들을 안쓰러워해 주는 이 사람을 만나, 나는 이제 또 벌떡 일어나 앉은 오뚝이가 된다. 아낌없이 나의 것들을 내어, 기꺼이 그에게 던진다. 마음이든 정성이든.


마음은 노화하지 않는다. 그저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나면 그만큼 더 영글고 성숙해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참 좋은 흙을 만난 식물처럼, 이 사람 곁에 자리 잡고 슬금슬금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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