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의 농도
- 이제 운동 끝났어. 어디야? 오늘도 수고 많았어.
오늘도 지나치게 다정한 그의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귀에 와닿는다. 머리 위에서 터뜨린 물풍선처럼 한 순간에 온몸을 감싸는 그 목소리에 정수리로 힘이 쑤욱하고 빠져나간다. 그리곤 몸이 흐물거려 어딘가 기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는 평균적으로 밤 9시 반이 지나야 일을 마치고, 그는 거의 대부분의 날에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을 한다. 그와 연애를 시작하고, 평일, 퇴근 후의 단출한 저녁식사와 노을 보며 산책하기 같은 것들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뭐랄까, 주말의 만남이 일종의 특별함이라면, 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소함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래도 그 덕에 그는 평소 스케줄 되어 있던 대로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또 그 나름 다행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위해 내 것을 기꺼이 버려야 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언제나 좋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마친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나 자전거에 올라타는 즉시 전화를 해온다. 그때마다 나는 집에 이미 도착해 있거나, 근처에 사는 언니와 밤마실을 가는 중이거나, 이동 중이거나 했는데, 그래서 처음엔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와 매일 통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우리는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에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긴 시간 알아 왔지만, 서로가 닿지 않았던 시간들엔 어땠었는지, 어떤 것들을 좋아하고, 어떤 일들에 격분하는지. 정세가 돌아가는 이야기처럼 진지한 이야기도 있고, 시답잖은 TV 프로그램이나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들의 이야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사이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함께 있고 싶다는 달콤한 말들도 잊지 않고 나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짙은 볼드체로 둥둥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오늘은 바빴는지, 뭘 먹었는지, 운동은 가는지, 어제 산다던 물건은 도착했는지, 하는 것들을 묻고 있다. 궁금해하고 있다. 그 사람의 매 순간이 궁금해 미쳐버릴 지경이 된다. 나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늘 나의 기분을 살펴주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 무언가 억지로 해주려 하기보다는 싫어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주는 사람. 그런 그 사람이,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의 연애가 원래는 어떤 모양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까마득히 잊게 한다. 뭘 하든 기꺼이 함께 하고 싶게 만든다. 내 심장을 너무 뜨겁게 비추어서 꽁꽁 싸맨 머플러도, 장갑도, 코트도 벗어던지게 만드는 태양이 되었다.
- 어디야? 집에 도착했어?
- 응, 와서 씻고 밥 먹는 중이에요. 다 먹고 연락하려고 그랬지.
나는 여전히 ‘지금 뭐 하고 있어, 어디에 가는 중이야, 방금 출발했어요’ 하는 시시콜콜한 일들을 매번 제때에 알리지는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잠깐 사이, 내가 그의 끊임없는 연락에 익숙해져 버린 것처럼, 그도 나의 무심함에 익숙해져 버리면 어쩌나, 멍청한 걱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진짜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고 말 것만 같다. 이렇게 다 벗어던지고 훌렁 벗고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간 불시에 쏟아져 내릴지 모를 소나기에 무방비로 쫄딱 젖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나의 이성적 자아가 속삭인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