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조금 핼쑥해진 듯 보이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착각이래도 좋다. 살이 빠질 땐 제일 늦는 주제에 찔 땐 제일 서둘러 지방을 축적하는 얼굴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됐다.
수술을 했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 두꺼운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을 갖고 있다. 나이를 먹으니 쌍꺼풀도 점점 얇아지는 것 같고, 곧 눈 위쪽이 움푹 들어가 버릴 것도 같다. 오른쪽 눈 밑 뺨에 신경 써서 보면 어라! 이렇게 큰 점이 있었어? 라고 모두가 말하는 신비로운 마법의 점도 있다. -이상도 하지, 어쩜 다들 그렇게 여태껏 전혀 몰랐어! 하는 리액션들인지- 불쑥 과학적 가설인지 미신인지, 눈이 크거나 눈 아래 점이 있으면 눈물이 많다는 말이 떠오르고, 그것들을 증명이라도 하는 걸까 싶다. 난 눈물이 많아도 너무 많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울어줄 수 있어서, 뭐랄까, 좀 우쭐했었다. 나는 이렇게 너에게 공감해 주고 있어. 나는 공감능력이 정말 뛰어난 것 같아 하는 느낌으로. 그런데 눈물이 많다는 건 세상 불편스러운 일이구나 와 닿을 때가 생각보다 많다.
4년인가, 5년인가 긴 시간 외국 남자와 연애를 하며, 결혼을 하고 싶은데 그의 마음은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몰라서 자주 속앓이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다이아몬드가 반짝거리는 반지를 보여주는데, 대낮의 브런치 식당에서 울어 버렸다. 나와는 거쳐 거쳐 알지만 아주 가깝지는 않은 다른 친구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는데, 날 벌레 보듯 전혀 그렇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쳐다보며 이상해했다. 백번 이해했다. 넘의 결혼 소식에 왜 내가 주마등처럼, 그들의 지난 역사들과, 그녀가 눈물 흘리며 마음 졸이던 장면들이 생각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마는 걸까. 내 덕에 친구도 눈시울을 붉히며, '응, 잘됐지, 고마워' 했다. 정작 우느라 축하의 말은 제대로 건네주지도 못한 채였는데.
이렇게 TPO time/place/occasion 에 맞지 않게 입혀진 눈물은 가차 없이 민망함을 수반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하다 하다 광고를 보면서도 우는 일이 잦다. 요즘은 왜 그리 심금을 울리는 광고들도 많은지, TV를 보는 시간까지 많아져서 곤혹스럽다.
눈물 많은 것도 유전이라더니 정말이구나, 하고 형부는 말한다. 언니네 집에 놀러 가서 저녁을 먹고 형부랑 셋이 앉아 맥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보고 싶었는데 못 봤던 영화를 결제했다기에, 다시 봐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집중해서 보다 보니, 집으로 싸들고 온 일을 하던 언니는 어느새 옆으로 누워 잠이 들어 있고, 나는 그 코미디 영화를 보며 울다가 형부랑 눈이 마주쳤다. 형부는 키득거리며 웃더니, 도대체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우는 거지 했던 언니랑, 아주 똑같은 부분들에서 내가 울더란다. 자는 언니까지 깨워가며 즐거워했다.
뭐, 이런 일은 이렇게 셋이 모이면 자주 겪는 일이다.
눈물에 관해선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친구들은 대화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내 목소리가 메이는 순간이 오면 얘 또 우네, 한다. 그럴 때 내 두 눈은 어김없이 빨갛고 축축하고, 난 금세 겸연쩍어진다.
임신 내내 온갖 합병증으로 자기 몸이 망가졌던 친구가 예쁜 딸의 사진을 보내주었을 때도, 강한 줄만 알았던 친구가 세 남매 중 맏이로 감수해야 했던 소소한 억울함 들을 이야기 할 때도, 생전 남의 얘길 잘 안 하는 친구가, 그 누구보다 이해해주길 바랬던 와이프에 대한 서운함을 별일 아닌 듯 툭 내던지 듯 꺼내었을 때도. 항상 한 발 앞서 눈물이 난다. 자꾸 더 많은 것들, 그 너머의 것들을 생각한다. 관계를 이루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험에서 오는 감동이나 서러움에 약하다.
울 일이 많은 삶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쉽게 겪지 않을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느껴야 했던 수억의 감정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울었다. 참지 않고 울어댔다. 당시에는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도, 언니와 방에서 소곤거리며도, 일기를 쓰면서도 울었다.
그렇게 눈이 부어 잘 떠지지도 않는 아침을 맞은 여러 날들이 지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이상하리만치 가슴에 앙금이 남지 않았다. 울어야 할 때 잘 울어주었더니, 감정의 찌꺼기들은 자연스레 눈물과 함께 쓸려나갔다.
지나버린 일들이 종종 후회스러울 때가 있지만, 과거의 일들이 억울하거나 분통해서 우는 일은 좀처럼 없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그 당시에 양껏 잘 울어둔 덕이겠지 한다.
잘 울었기에 잘 살아왔다. 마음의 독을 서서히 부작용 없이 내보내 준 가장 올바른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지닌 동물들은 모두 운다. 울기의 기능을 굳이 신이 우리에게 준 것은, 잘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 여겼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그 도구를 다루는 스킬이 아주 뛰어난 고렙high level 의 요정 인지도 모른다. 슬픔 때문에, 아프거나 억울함 때문에, 또 다른 온갖 감정의 사투들 속에서 울고 또 울어 차근차근 레벨을 올려온 거다.
울고 싶게 답답한 일들이 있다. 그래, 조금 더 힘내서, 여태 그랬듯 솔직한 감정으로 잘 울고, 잘 살아 보자,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