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4
어쩜, 이렇게 예쁜데 향기롭기까지 한 걸까.
평소 애호하는 색이 아닌데 유독 꽃 만은
해바라기, 재스민, 민들레 같은 노란 꽃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랬을까. 그 꽃을 만난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자료를 찾다가 흘러 들어간 블로그에
어느 플로리스트가 작업한 미모사 리스wreath의 사진을 보면서, 내년엔 나도 꼭 저 샛노랗고 예쁜 것을 만들리라
마음속의 to do리스트에 넣었다.
코 끝에 현실처럼 그녀의 향이 맺혔다가 흩어진다.
이 향기롭고 귀여운 꽃엔 역시 ‘그녀’라는 느낌.
예년에 비해 더 추운 가을인 건지,
올해의 겨울이 빨리 온 건지.
결국 같은 소리인데도, 무언가 변했다는 말보다는,
빨라졌다는 편이 조금 더 낫다고.
애매한 이유를 내세워 겨울이 이른 거라 생각하기로 한다.
향기롭던 코 끝은 집을 나서자
금세 찬 공기에 얼어붙을 지경이 된다.
10월의 반을 넘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후의 빛이던 6시는 저녁의 것이 되어 있다.
그래도 노을만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하늘에 물들어간다. 빨라지는 것들 사이에 온전히 제 속도로 나아가는 것에
불쑥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속, 마스크를 한 나를 본다.
그래도, 이제 날이 더 차지면 마스크 아래에 애먹는 피부도 조금쯤은 편안해지려나.
얼마 전 염색한 짙은 갈색 머리칼 한가운데에
삐죽 튀어나온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아마도 얼마 전에 습관적으로 뽑았던 아이일까.
짧게 올라온 것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검지 손가락 끝이 아프도록 손톱으로 집어 보아도
끝내 뽑히지 않고 꼬불거리며 말려버린 그놈을,
다른 머리칼의 틈으로 욱여넣고, 괜히 풀이 죽는다.
나는 아직 젊은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음도 머릿속도 아직 철들지 못한 채로
몸뚱이는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나이를 잘도 먹는다.
만나기로 한 지인의 집에 발을 들이자,
은은한 미모사 향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운다.
따뜻하고 확실한 봄의 색을 가지고도,
용케 겨울이 미처 다 지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그녀의, 미모사의 짙은 향이,
이르게 오는 것들에도 마음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나는 각성하듯,
나의 청춘에게 인사를 고할 것을 연습하기로 한다.
느리게 흘러주는 마음을 위안으로 삼고,
조금 이르다 느껴지는 속도로 바짝 다가와 선
나이 먹음을 기꺼이 환영해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