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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Jul 29. 2024

그 집 사람들의 봄




  그 집 처는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겨울바람 끝에 한 움큼 온기가 묻어 불어올 즈음이었다. 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봄이 온다는 이유였다. 쭈그려 앉아 있던 그 집 아들이 몸을 일으켜 청소를 거든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마음이 기울었다. ‘혹시’라는 경계에 쌓여있던 마음이 기울어 기대로 채워졌다. 머지않아서 그 집에 기어이 봄은 와버렸다. 


  그 집 사람들이 기다렸던 그해 봄은 늘 오던 시기에 왔지만 더디게만 갔다. 이따금 그 집 아버지는 오후 네 시를 넘어가는 시각에 처와 자식을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집에서 조금 떨어져 사람들의 눈이 드문 골목길 끄트머리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잠시나마 식구들 얼굴을 보고 가려 했던 것이다. 처와 아들은 오랫동안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은 낡은 굴뚝이 서 있는 목욕탕 옆으로 난 골목길을 걷는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동네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굴뚝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나른한 오후의 무료함을 달래보는 것 같다.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지 않는 듯 구석구석 보는 노파처럼. 골목길 끄트머리에 검정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내려가는 차창 넘어 그 집 아버지가 손짓을 보낸다.  


  검정 자동차는 그 집 식구들이 타고 다녔던 은색 차보다 좁았다. 급한 대로 오백만 원에 구매한 중고 SM3였다. 그 집 아버지는 별일 없는지, 안부를 물었다. 매일 아침 세차게 현관문을 두들기는 우체부가 지방법원에서 보낸 우편물들을 건네는 아침에서부터 지금 낯선 차에 타 있는 상황까지 별일투성이인 계절 안에서 조화롭지 못한 질문이었다. 분명한 답이 있는 질문에 회답 대신 한숨이 돌아왔다. 차 안 묵직한 공기에 무거운 숨 한 덩이가 올려졌다. 그 집 아버지는 아들에게 종이봉투를 건넸다. 구겨진 흰 종이봉투 안에 비틀어진 오징어가 들어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구운 오징어였다. 그 집 아버지는 종종 휴게소를 들릴 때면 그곳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를 집에 사 오곤 했다.  


  그 집 처와 아들은 집에 돌아왔다. 아들은 오징어 봉투를 책상에 던져 놓고 이불 위에 바로 누웠다. 눈에 끼인 계절의 꽃가루처럼 그 집 아들에게 아버지를 마주하는 일도 그 집 식구들을 둘러싸고 있는 뻑뻑한 상황도 모두 피곤한 일이었다. 눈은 천장의 낡은 벽지 속 흐릿해져 가는 무늬를 따라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혓바닥 아래 돋아나 새카만 피가 맺혀 곪아있는 혓바늘을 아랫니에 문지른다. 아려온다. 그럼에도 혓바늘은 뾰족한 송곳니를 오르내렸다. 잠잠한 집안에 처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 집 아버지는 차를 돌려 되돌아오고 있었다.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했다. 한숨을 내쉰 아들은 옷을 챙겨 입었다. 


  그 집 아들은 조수석에 앉았다. 거울을 찾아 선바이저를 펼쳤다. 거울 가까운 곳에 얼룩이 져 있다. 응고된 피 같았다. 누가 어떤 이유로 처분한 차인 줄 알 수 없듯 그게 피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도로 선바이저를 닫았다. 선바이저를 만진 손가락과 기대고 있는 등이 불편해졌다. 사는 동네를 벗어나 얼마 떨어진 모텔촌에 들었다. 거부감이 드는 업소들을 지나서 좁게 나 있는 길들을 돌아 갈 만한 모텔에서 방 하나를 잡았다. 주차장 모퉁이 쪽문으로 나와 식당이 줄지어 늘어선 먹자골목을 찾았다. 잘 곳과 먹을 곳이 잇대어져 있다. 어떤 게 먼저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나란히 존재한다. 


  그 집 식구들은 낯선 곳에서 익숙한 음식을 찾아 걸었다. 가는 식당마다 아직 문을 열지 않거나 그날 장사를 개시 중이었다. 정해진 곳 없이 그들에게 익숙한 음식을 파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가 가능한지를 묻고 돌아 나오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세 식구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집 아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까지 거쳐온 과정이 그들이 살아온 삶과 닮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었다. 이집 저집에 아쉬운 소리를 하고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날이 저물어가는 낯선 곳에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으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그 집 아들은 나오려는 한숨에 굳게 입을 다물었고 두 입술을 오므렸다. 숨이 새지 않게 꽉. 마시는 숨보다 크게 내쉬는 숨이 그득한 나날에 하루 세 번만 한숨 쉬기로 했다. 세 번째 한숨은 하루의 고단함이 모두 지나갔을 때 쉬기로 했다. 


  그 집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모텔 앞에서 흩어졌다. 그 집 아들은 처에게만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먼저 돌아섰다. 등에 닿는 시선을 느꼈지만 곧장 걸었다. 여전히 그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은 걸 알았지만 잇따라 걸었다. 묘한 네온사인 불빛이 그득한 거리에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모텔촌을 길이 난대로 걸어 빠져나와 마주한 건 큰 도로였다. 차들이 지나는 왕복 팔차선 도로는 소리부터 다르다. 차량이 공기를 가르며 일어나는 바람 소리는 보이지 않는 계절의 막을 뚫어낸 듯하다. 군데군데 들려오는 계절의 막이 찢어지는 소리에 숨이 좀 트였다. 입 밖으로 큰 숨을 뱉는다. 기도에 달라붙은 채로 굳어버린 숨이 떨어져 나온 것만 같다. 식당 앞에서부터 참았던 한숨이었다. 걸음이 느려져 갔다. 좀 전과 다른 터벅터벅 걷는 걸음이다. 아랫니에 닿은 혓바늘이 따끔거렸다. 입안에 피 맛이 났다. 길가 가로수 아래 침을 뱉었다. 묽은 침에 피가 섞여 있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집 아들의 느린 걸음보다 더 느리게 가는 계절이었다. 오늘 그 집 아들은 여러 공간을 지나왔어도 이 계절은 지나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계절의 하늘 아래였다. 계절의 여왕 눈 밖에 나버린 채 여왕의 손바닥 안에서 걸을 뿐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여왕의 영역이었다. 걸어봐도 걸어봐도 벗어날 수 없는 계절, 가혹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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