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 탑승했다. 예매한 좌석은 역방향이다. 여러 가지가 자연스러운 정방향과는 달리 역방향은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 그럴만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형편으로 서울에 있는 면접 장소에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가는 것 같다. 예상되는 질문에 대비해서 작성한 답변 출력물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대기실은 박물관 유물정리실에 마련되어 있었다. 면접을 진행하는 조교는 내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붙여 나를 불러주었다. 내 앞 예닐곱 명의 모든 대기자 순서가 지나 내 차례가 왔다(아마도 원서 제출 순으로 면접 심사를 진행하는 듯 싶다. 원서 마감 세 시간 전에 제출한 내가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숨기거나 꾸밀 것 없는 면접을 마쳤다. 면접장을 나와 맞은편 건물 화장실에서 텁텁해진 입을 수돗물에 헹궈냈다. 거울 앞에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늘렸고 바지 속에 넣었던 셔츠를 빼냈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이층 전시관 내부 휴식 공간 소파에서 몸을 늘어트린 채 크게 나 있는 창으로 밖을 본다. 유월의 선명한 계절색 나무가 있는 정원. 그 뒤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유리창에 되비치는 빛을 살피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유의 방[1]에 들어왔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두 반가사유상은 내 생에서 본 얼굴 중 가장 편안한 얼굴이다. 두 미륵보살[2]의 아득한 사유에서 오는 미소는 아늑했다. 나는 부처께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회를 잡게 해달라고 합장하여 고갤 숙여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내 멋대로 지금 바라는 일이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일로 분별하는 것만 같아 망설이다가 결국 하지 않았다. 사유의 방에서 간격을 둔 채 나란히 있는 반가사유상. 오른편 반가상 [국보 제 83호] 뒤로 돌아 두 미륵부처 사이의 간격을 걸었다. 간격의 끝을 지나 반가상[국보 제 78호] 뒤에서 측면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좌측면에 다다랐다. 새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순간부터 나의 새 삶은 시작되었다, 고 생각했다. 사실 깨달았다, 라고 하고 싶었지만 세상에 온 지 천 년이 넘은 불상들이 놓여있는 이곳에서 깨달음이라는 말과 나 사이에 아스라이 간극을 느꼈다.
서울역 역사 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이미 플랫폼에 들어와 있는 하행선 기차에 올랐다. 역방향 좌석에 앉자마자 구두를 벗었다. 내내 혹사당한 발을 구두 위에 올려두고 시트에 기대어 축-널브러져 버렸다.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진다. 복도를 지나가는 몇몇 승객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신경 쓸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 고속열차를 덮은 터널 같은 밤 안에서 내 방이 있는 도시로 가는 기차에 업혀 가는 것만 같다. 아침 역방향 열차와는 정반대의 처지다. 지나가고 있는 이날을 살펴본다. 마주하는 순간순간은 길었지만 하루 전체를 돌아보면 짧았던 하루였다. 분명 동일한 유속으로 흘렀겠지만 허기가 진채로 정수기에 냄비를 바치고 받는 라면 물처럼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이 고르게 섞여 있는 하루였다. 열차 내 도착 방송이 나왔다. 부어버린 발이 구두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로 발을 욱여넣고 하차했다.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걸음에 엄지보다 더 긴 검지 발가락과 발뒤축이 몹시 쓰려왔다. 대중교통이 막 끊겨버린 시간에 택시를 잡으려다가 집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새벽 기상부터 시작된 고됨을 하루의 끝까지 완성해 보고 싶어졌다.
내 방에 들어왔다. 가방을 걸어두고 아흑-하는 소리와 함께 옷을 벗었다. 긴 행군을 마치고 내무반 침상 위에 벗어 놓은 전투복과 던져놓은 장구류처럼 갓 벗어 놓은 형태로 쌓여있는 바지와 셔츠 양말과 타이를 본다. 한 가운데 종일 구두에 짓눌려진 벌건 두 발이 있다. 종일 나를 갑갑하게 했던 것들을 몸에서 치우고 속옷만을 입고 침대에 앉아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이럴 때면 나는 맛을 본다. 삶을 맛본다. 한동안의 애씀을 마치고 어딘가에 축- 늘어져 느끼는 고단하면서도 개운한 인생의 맛을. 나의 삶에서 드문드문 찾아오는 이 맛을 이천십구년 연희동의 어느 에이전시 면접을 마치고 걷던 내리막길에서부터 인생 오르가슴으로 부르고 있다. 긴장감은 지난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며칠간 배탈이 났다. 준비하는 자 갈망하는 자의 배는 아프다. 나의 배는 자주 아팠다. 내 침대에 누워서 꾸던 꿈에서부터 이뤄내기 위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침대 위에 있다. 언젠가 훑어 읽어갔던 정신과 의사의 글이 머릿속에 스친다. 캡처해 두었던 이미지를 찾아 앨범을 뒤적인다. “오르가슴을 경험할 때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모두 활성화된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감동을 느낄때도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감동은 정신적 오르가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침대에 앉아 아파트 십 층 발코니 창으로 들어와 견디기 좋을 만큼 내 방을 훈훈히 데워 가는 초여름 공기 속에서 스스로 부여한 과정을 모두 거쳐 온 나에게 감동해 있다.
[1]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된 공간.
[2]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불.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이후 56억 7천만 년이 되었을 때 후에 부처가 될 것이라 예언을 받은 보살들이 거주하는 도솔천에서 이 세상으로 하생한다고 한다.
[3]
감정이라는 언어. 문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