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 듯 귀엽고, 귀여운 듯 뭉클한
요즘 우리 동네 산들이 귀엽다.
크고 웅장한 산은 아니다.
어깨도 낮고 성격도 온순한,
사람 같으면
“나 그냥 산책이나 좋아해요~”라고
말할 것 같은
야트막한 산들이다.
그런데 봄이 무르익으면서
그 산들 위에
나무들이 잎을 내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봉긋봉긋
초록 머리들이 가득 올라왔다.
멀리서 보니
산 전체가 마치 브로콜리처럼
몽글몽글한 모습이다.
영양가 높은 자연의 도시락 같달까.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속이 편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유질이 차오르는 느낌.
마음의 장운동이 슬슬 시작되는
그런 봄날이다.
예전엔 봄이 오면
괜히 들떴다.
뭔가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도 함께 왔다.
그런데 이번 봄엔
아무 말 없이 무성해진 나무들,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듯
잎을 피운 그 풍경이
왠지 더 정겹다.
문득, 대학교 은사님이 떠오른다.
봄이면 늘 연둣빛 새싹을 만지며 말씀하셨다.
“내가 이걸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그 말이 올 봄에는 더 크게 들린다.
그래서 나도 요즘
브로콜리 산을 자주 바라본다.
웃긴 듯 귀엽고,
귀여운 듯 뭉클한 그 풍경.
제자리에서 잎을 내민 나무들이
지나가는 나를 향해
'여전히 잘 지내지?' 하고
손을 흔드는 것만 같다.
바람에 살랑이며
안부를 묻는
푸르른 브로콜리
한 송이 한 송이가
내 마음에 쌓인 먼지를
부드럽게 쓸어주는 봄.
건강한 초록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다
싱그러워지는 기분이다.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보기에 참 좋은 봄이다.
산은 말이 없지만
어쩐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흔들리는 브로콜리 뽀글 머리로.
귀엽고 웃기고
그런데 왜 이렇게 눈부신 걸까.
봄은 늘 그런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