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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Dec 13. 2021

잔인하고 희망찬 평가 시즌이 돌아왔다

출퇴근길이 어둑해지고 바깥공기가 서늘해지는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평가 시즌이 돌아온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시간의 시작이다. 어떤 이는 연봉 인상과 승진을 기대하지만, 또 어떤 이는 내년에도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회사마다 평가법은 제각각이지만, 1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나열하고 각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업무 평가 이외에 역량에 대한 평가도 진행한다. 동료를 얼마나 성심껏 도와주었는지, 팀에 얼마나 헌신했는지, 팀원 간의 관계는 좋았는지 따위를 수치화한다. 그리고, 같이 일한 동료를 평가한다. 장단점을 서술하고 항목별 점수를 부여한다. 본인 평가와 동료평가가 마무리되면 최종적으로 매니저가 평가를 마무리한다.


사실, 직무에 대한 평가를 수치화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기준도 불명확한 데다, 부서나 팀장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누구에게나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팀장 눈에 아니다 싶으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아무리 검증된 시스템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결국 인사고과는 매니저의 머릿속에 각인된 일종의 편견으로 결정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평가에 길들여져 있었다

시험을 치고 그 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수와 우가 많은 성적표를 받은 아이에게는 모범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왜 모범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줄 세우기는 일부 아이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주었다. 모범생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아이들은, 마치 낙오자라도 된 것처럼 선생님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든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성적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 되었다. 외모도 마찬가지다. 180이 안 되는 키를 가진 사람은 루저라 불린다. 미인은 대접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관심 밖이다. 조금이라도 미인의 기준에 다가가기 위해 얼굴을 고치고 몸을 만든다. 취업시장도 다를 바 없다. 명문대 출신들이 대부분의 대기업을 선점한다. 지방대생은 작성하는 이력서가 수십 장이지만, 결과는 늘 다르지 않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정보회사는 연봉과 외모를 등급 화하여 급이 맞는 사람들끼리 맺어준다. 모든 것을 평가하고, 평가받는 세상이 되었다. 


회사라고 다를까.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할 리 없다. 평가는 사원의 줄을 세우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다. S등급을 받은 직원은 우월감을, B나 C등급을 받은 직원은 허탈함과 불안을 느낀다. 나름대로 노력했다 생각했지만, 회사는 내 노력에 응답하지 않는다.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늘 더 나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지만, 괜히 얄미워 동료의 점수를 짜게 적는다.


매니저는 높은 등급을 받은 사람의 모범적 행동(희생, 헌신, 워라밸 파괴)에 찬사를 보낸다. 너는 왜 그러지 못했냐며 내년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직무에 대한 평가인지, 인성에 대한 평가인지 헷갈릴 정도다. 더 높은 직급에 있다고 더 나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우월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회사와 직원은 계약 관계일 뿐이다. 회사에 헌신하는 정도는 그 사람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다. 회사가 모든 가치의 첫 번째 있는 사람은.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회사 일에 매진한다.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처럼 보인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회사보다 자신의 여가나 가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회사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일터일 뿐이다. 어떤 사람의 삶이 더 성공적이냐는 건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그렇다고 평가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면, 평가와 그를 통한 인력배치는 적절한 비용을 산정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다. 다만, 평가로 인해 좌절하거나 쓸모없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타리 쳐진 갇힌 공간에 있다 보면, 사고도 그 환경에 맞게 변해버린다. 여기를 벗어나면 마치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보면 내가 왜 그 속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을까 싶을 만큼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평가자는 직무에 대해서만 평가했으면 좋겠다. 피평가자는 결과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평가가 아님을 기억하길 바란다.


모두에게 평화로운 평가 시즌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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