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자가면역질환

#열아홉번째

by 신푸름
우리 몸속에 어떤 병균이 들어와 이에 대한 항체가 생기면, 그 항체가 있는 동안은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면역이라고 한다.

자가 면역 질환은 체액성 면역, 세포성 면역 또는 양쪽 모두에 의해 세포나 조직에 손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이처럼 면역계의 자가 항원(autoantigen)에 대한 부적절한 반응을 자가 면역이라고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에서 -


한창 운동할 때는 새벽, 저녁으로 조깅을 하고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식단도 지독하게 해서 닭가슴살 외에 쌀밥같은 탄수화물을 거의 먹지 않았다. 밥을 먹고 싶으면 시중에 곤약 볶음밥이 잘 나와 있어서 그걸 데워 먹곤 했다. 지금은 식단 조절과 헬스는 하지 않고 있고 오직 새벽, 저녁 운동만 하는데 원망스럽게도 나의 먹는 양을 내 몸은 소화를 다 못 시키나 보다. 어느 순간 여자 친구와 함께 찍는 사진 속의 내가 많이 부어 보였다. 부은게 아니라 살이 찐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최근에 여자 친구도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싶어해서 이왕 하는 김에 같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다가 태권도로 생각이 모여서 여러 군데를 찾아봤다. 요즘에는 방과후 학생들을 위한 학생 위주 수업이 많고 성인반 운영은 많지 않아서 알아볼 곳이 한정되어 있었다. 여러 정보를 찾고 나서 한 군데를 선정하고 직접 방문해서 상담해보기로 했다.


태권도장이 위치한 곳은 차량이 복잡하게 주차되어 있는 곳이었다. 운전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나는 어떠한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이 어려운 구간을 잘 넘어가고 집으로 무사히 복귀하길 빌었다. 방문한 시간이 저녁 시간대라 노상주차가 어려워서 태권도장이 위치한 건물 지하에 주차했다. 주차를 하고 보니 자리가 매우 협소해서 나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안고 상담을 받으러 올라갔다.


상담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상황을 맞이 했다. 좁은 출입구에 차량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고 이미 주차되어 있는 차량 2대도 나가려고 이리저리 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한 번에 한대만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라서 3대가 동시에 각자의 상황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가세하면 4대가 복잡하게 움직이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운전에 능숙하신 분이면 귀찮은 상황이다 정도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이 상황이 큰 벽을 만난 것 같았다. 내 능력 안에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니 마음도 조급해지면서 화까지도 났다. 결국 옆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까지 어두운 기운이 전해져서 불안한 마음을 생기게 했다.


이 상황을 능숙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감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여자 친구에게 보이는 것도 부끄럽고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시려던 어떤 운전자 한 분이 도와주시려고 이리저리 지시를 해주셨는데 감사한 마음보다 앞서서 나 자신에게 들었던 화가 말 그대로 불(火)이 되어서 모든 머릿속을 불태우는 느낌이었다. 주차장을 나와 도로로 진입하고 나서야 불이 꺼지면서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주변 사람을 불안하고 힘들게 했다.


사람이기에 상황에 따라 감정이 북받쳐 화가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내 안에서 잘 다스리고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어야 했는데 그 모습이 부족했다. 객관적으로 내 자신을 보는 순간 자책을 많이 하게 되면서 내 자신이 싫어졌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불안감을 준 것도 나 자신을 컨트롤 못해서 벌어진 일이기에 아쉬웠다. 이제는 그러한 부끄러움과 실망감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잡아먹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자책과 실망감이 자가면역질환처럼 내 정신을 갉아먹고 공격해서 심적으로 힘들게 했다.


여자 친구가 지난 나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 정신적인 자가면역질환 같다고 비유로 이야기해줘서 공감이 많이 갔다. 나는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 감정이 올라오는지 잘 모르고,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인내심이 강한 편이라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그것을 많이 누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한 번씩 둑이 터지듯이 감정이 터지면 많이 겪던 상황이 아니라서 당황하고 감정의 급물살을 타고 허우적거리다가 그것이 일련의 사고를 거쳐서 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화는 나 자신을 겨냥해서 쏘는 화살 같이 마음에 상처를 안겨준다. 적절한 비유가 주차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한 번에 정리시켜 주었다. 최근에 여자 친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가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아픈 곳을 진단해주는 의사 선생님 같다. 여자 친구에게도 내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정신적으로도 강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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