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강나이트워크에 참여했다. 작년에는 가을에 열렸던 2022 브릿지워크서울에 참여했었다. 걷기 중독에 빠진 나에게 이런 행사는 하루 걷기 할당량을 채울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참가비가 다른 대회에 비해 살짝 비싸긴 하지만 대회 진행이 깔끔하고 서울 지리를 잘 몰라도 안내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작년 첫 참가 후 굉장히 만족했던 행사였기에 기회가 있으면 또 참여하려 했었다.
이번엔 더운 여름날 저녁에 행사가 진행되어 고민을 했다. 뜨거운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요즘, 해는 늦게 지고 그만큼 지열도 오래가서 걷기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해가 진 밤에는 열대야가 계속되어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더워서 잠에서 깨기를 반복할 정도였다. 참가하려고 했던 저녁 6시 시간대의 기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걷기 대회 완주를 통해 맛보는 성취감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만한 중독성이 있었다. 완주하고 들어왔을 때 받는 메달이나 기념품은 부가적인 행복의 요소였고 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는 것이 자존감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 이직 준비로 많이 자존감이 내려간 상황이었는데 나 자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내면의 힘을 채우기 위해 추가 신청기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2023 한강나이트워크 15K 코스
사실은 더 긴 코스가 있었다. 22K, 42K도 있었는데 이 코스들을 하려면 오랜 시간을 버틸 체력이 있어야 했다. 사실 체력은 걱정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간식이나 물은 당연히 챙겨야 하고 그런 것을 보관할 백팩도 있어야 했다. 체력만 생각해서 준비물이 적을 수도 있지만 핸드폰 보조배터리나 쉬기 위한 용품도 챙긴다고 하면 짐은 더 많아질 수 있다. 나는 그런 준비물이 걷는데 거추장스럽고 답답해서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15K 코스를 택했다. 예상 완주 시간은 3시간으로 저녁 6시에 출발해서 원주 집으로 복귀할 수 있는 당일치기가 가능하다는 점도 코스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동행자가 있으면 재미있게 하고 왔을 수 있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리 많지 않았고 스케줄이 맞는 사람도 없었다. 작년에도 혼자 참가했었고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경험했기 때문에 어색하진 않을 것 같았다. 걷기 대회 당일, 추가 신청기간에 신청한 사람들은 기념품과 안내문이 들어있는 러닝 패키지를 현장에서 받아야 했는데 그때 앞서 줄 서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티셔츠는 평소 사이즈보다 한 사이즈 크게 신청했다. 딱 맞는 건 걸을 때 답답하게 느껴져서 여유 있는 사이즈로 택했다. 나는 걷기 대회 때 주는 티셔츠를 대부분 입지 않고 참가를 하는 편이다. 이런 티셔츠 대부분은 행사 이름이 눈에 띄게 박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나 오늘 걷기 대회합니다!' 광고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입기로 했다. 집에서 입고 나온 옷 보다 더 시원했기 때문이다.
출발 전 몸풀기 실시하는 모습
출발 시간인 저녁 6시 전에는 대회 스폰서들 부스에서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기념품 행사가 진행되었고 무대 앞에서도 진행자가 쉴 새 없이 참가자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소감, 각오 등을 들으면서 시간을 알차게 채우고 있었다. 선크림도 충분히 바르고 몸도 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혼자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보니 뜨거운 햇빛 때문에 급피곤해진 모습이라서 실망만 했다. 그냥 주변 풍경이나 찍기로 하고 출발선 근처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참여자들이 많은 걷기 대회에서는 최대한 선두권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걷기대회 다수 참여 경험으로 느꼈었다. 코스로 정해진 길은 폭이 한정적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지나갈 수 없다. 만일 앞서 가는 사람들이 천천히 걸으면 뒤에 가는 사람도 천천히 가게 된다. 그래서 사이드로 빠져서 빠르게 지나가거나 길이 넓어지는 구간을 노리고 재빠르게 추월해야 하는데 나에겐 이것도 굉장히 눈치 보이고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추월하는 사람을 한 번씩은 쳐다보게 되는 게 본능적인건지 그렇게 주목받는게 불편했지만 막히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을 피해 빨리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선두권에서 가게 되면 이런 불편함이 적기 때문에 출발선 근처로 갔다. 먼저 같은 시간대의 45Km 코스 참여자들이 먼저 출발하고 15Km 참여자들이 뒤따르기로 했다. 출발 신호에 맞춰 거대한 인파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도 발 빠르게 선두권에 붙어서 움직였다.
저녁 6시는 아직 밝았고 야경을 보긴 힘들었지만 충분히 한강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간혹 가다가 펼쳐지는 다리 건너 서있는 높은 건물들의 풍경을 찍기도 했는데 대부분 감성사진이라기 보단 '나 이런 곳에 왔었다'라는 인증샷 느낌의 사진이었다.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면서 걷는 것이 이 대회의 취지지만 나는 야경을 보기보단 예약한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뒤에 괴물이 따라오는 것 마냥 빠르게 움직였는데 다행히 시간이 넉넉히 남아 예약 시간을 당길 정도였다.
체크포인트 쪽에서 CP뱃지를 받고 반환점을 돌았다. 그때쯤 되니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름 저녁인데도 이런 바람이 부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덥고 습한 바람이었으면 걷기 답답했을 텐데 그날만 그랬던 것인지 땀을 식힐 정도의 바람이 불어 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2시간 40분이 지나 시작점으로 돌아와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완주하고 스태프 분들이 주는 메달과 기념품을 받고 나오면 무대 쪽에서 완주자들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진행이 되는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철 역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내가 생각해도 여러가지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는 행사인데 정말 걷기만 쏙 하고 온 것이 어이없긴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많은 것을 얻어왔다고 생각한다. 앞서서 말했던 완주 후의 성취감, 그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 두 가지는 나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할 때 필요한 동기부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을 알기에 조금 쳐지고 있는 요즘, 이 경험이 꼭 필요했다.
2023 한강나이트워크 15K 완주메달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상황이 변한 건 없지만 삶의 태도가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 걷기대회에서 반환점을 돌고 기분좋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 것 좋은 기운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다. 내가 생각한 나의 최선을 좀 더 상향시키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갈팡질팡하던 마음도 '일단 이렇게 해보자'로 결정을 내려가고 있다. 늦은게 아닐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스트레스가 되어 목표를 완주하려는 나의 의지를 계속 꺾으려고 하지만 완주 끝에 기다리고 있는 성취감은 너무나 달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이번 걷기대회로 그 맛을 강렬하게 기억나게 했다.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되는 한 걷기 대회에 여러 개 더 참여해볼까 한다. 즐거운 경험에서 끝이 아니라 나의 성장에 큰 거름이 되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