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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l 29. 2019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101 보충대

  용산역에서 기차를 내려 용사의 집에서 잠시 대기를 하다가 다시 101 보충대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의정부 101 보충대는 추웠다. 논산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막사 안은 그야말로 냉동고였다. 천정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창문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 겨울에도 영하 10도 밑으로 거의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란 탓에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내무반장은 ‘요즘 거의 매일 영하 17,8도를 오르내린다’고 했다. 내무반에 설치된 난로는 본연의 임무는 잊은 채 실내를 더 춥게 만드는 소도구에 불과했다.

   보충대는 깎아지른 듯 시원스런 도봉산 바위 암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충대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암벽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수려했다. 알프스 연봉이 저러하리라.

 보충대에서는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며 기다리기만 했다. 2,3일이면 자대로 간다고 했는데 5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눈 치우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심심하기까지 했다. 내무반장은 ‘여기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다 맘껏 놀아라. 자대 가면 놀 시간이나 있나 봐라’ 고 했다. 큰 형님 같았다.

  그래도 눈 치우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다. 그 넓은 연병장의 눈을 다 쓸고 담가에 퍼 담아 주변 논에 내다 버려야 했다. 눈 치우기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눈 내리는 도봉산은 더욱 아름다웠다. 눈 치우는 틈틈이 한참씩 허리를 펴고 도봉산 준봉을 쳐다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눈덮힌 도봉산은 빨리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보충대에서 가장 큰 위안은 PX였다. PX에서는 얇디얇은 크림이 든 군대 빵이 아닌 사제 빵을 팔았다. 팥이나 크림이 잔뜩 든 빵은 입에서 그냥 녹는 것 같았다. PX 출입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위병소 바깥을 나갈 수 없을 따름이지 병영 안에서의 행동은 아주 자유로웠다. 점호조차도 취침 점호였다. 아무에게도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가 자유의 소중함을 절감한 며칠간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야간에 화장실을 갈 때는 5명 이상이 함께 가야 했다. 때문에 화장실을 가려면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해야 했다. 어둠을 헤치고 떼거리로 화장실을 가면서 우습다며 낄낄대기도 했다.

   1주일쯤 지나 드디어 자대로 가는 날 연병장으로 트럭이 꾸역꾸역 끝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신병들은 연병장에 도열해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렸다. 대부분의 신병들이 트럭을 타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까지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논산에서 함께 온 상복이도 인락이도 그때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보에 밝은 녀석들은 101보에서 3사단만 가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3사단은 최전방이기도 하지만 군기가 무지하게 세다는 거였다. 신병들을 실은 트럭들이 하나 둘 떠나고 트럭이 몇 대 남지 않았을 무렵 내 이름이 불렸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트럭들은 하나같이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그 트럭이 우리가 타야 할 트럭이었다. 트럭 먼지로 보아 우리가 가장 멀리 있는 부대로 갈 것이고 최전방일 것이 분명하다고 쑥덕댔다.

   트럭 뒷간에 올라타자 인솔병은 더플백을 엉덩이에 깔고 앉으라고 했다. 신병들은 하나같이 침울한 얼굴을 하고 묵묵히 눈을 감고 있었다. 최전방으로 가야 한다는 암울함과 후반기 교육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짓눌렀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있을 때 운전석 옆 자리에 앉아있던 인솔병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 3사단 들어 봤나? 3사단. 우리가 가는 데가 바로 그 3사단이다. ”

 “너희네 사단 구호가 뭔지 모르지? 백골이다, 백골. 남한 장교 군번 한 트럭하고 안 바꾼다는 북한 오성산이 빤히 보이는 곳이다. 어떤 곳인지 가보면 안다.”

병사의 그 말은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들어 있는 병사들을 더욱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꾸릿꾸릿한 기분 속에서도 발이 떨어질 듯 시린데도 잠은 쏟아졌다. 쉼 없이 달리던 트럭이 어디에선가 멈추어 섰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바깥을 내다보니 자그마한 가게 앞이었다.

 “야 너희들 호빵 먹을래? 먹고 싶으면 돈을 내라”

인솔병은 먹고 싶은 사람은 100원씩 내라고 했다. 인솔병은 꼼짝하지 말고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하고는 트럭에서 내리더니 잠시 후 김이 무럭무럭 나는 호빵을 가지고 차에 올라탔다. 100원을 냈으니 호빵을 몇 개씩은 나누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호빵을 모두에게 하나씩밖에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이었다. 호빵 하나가 100원씩이나? 입대할 때만 해도 호빵 한 개에 20원인가 밖에 하지 않았는데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오르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그저 고맙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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