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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n 24. 2019

아침이면 어김없이 참새가

  청아한 새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맑고 투명한 소리가 꾀꼬리 같긴 한데 설마 꾀꼬리가 이런 도심 한가운데 숲으로 날아 올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새일까 궁금증이 더한다. 봄이 무르녹으면서 아침마다 뻐꾸기가 잠을 깨운다. 새벽부터 울어대던 산비둘기는 소식이 없고 대신 밤마다 소쩍새가 피를 토하는 울음을 운다. 옛 우리 조상님들은 소쩍새 울음을 “솥적다 솥적다”로 들으려고 했다던가? 오죽 배가 고팠으면 솥이 적을 정도로 밥을 많이 지었으면 하는 바람을 소쩍새 울음소리에까지 실었을까! 

  녹음이 짙어지면 집 뒤 낮은 산은 새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고 만찬장이 되고 침실이 되기도 한다. 집 주변 산은 새소리로 더욱 요란스럽다. 아침이면 우리 집 주변은 유독 참새 소리로 시끄럽다.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날아든 참새들로 새벽부터 집 주변은 초등학교 교실처럼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저희들끼리 아닌 체, 놀고 있는 체하지만 아침밥을 달라는 채근을 그렇게 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추운 날씨에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 벌레 먹은 쌀을 주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몇 마리 날아오지 않던 녀석들이 어디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식구나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날이 채 밝기 전부터 수십 마리 참새 떼가 담장에, 나뭇가지에 날아와 아침잠을 깨운다. 날씨가 풀리고 벌레가 많아졌을 텐데도 녀석들의 방문은 그치지 않는다. 쌀이 더 맛있기 때문일까 벌레 잡는 수고로움을 덜고자 함일까? 나누어줄 쌀이 다 떨어져 가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녀석들을 먹이기 위해 멀쩡한 쌀을 먹이로 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녀석들은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방문을 멈추지 않을 텐데 난감하기까지 하다. 

   어릴 적 참새는 참 미운 녀석들이었다. 따가운 가을햇살 아래 잘 익은 벼이삭만을 골라 쪼아 먹는 얄밉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할머니는 논두렁으로 손자를 끌고 가 참새를 쫓았다.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깡통을 두들기게도 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참새들은 어린아이의 작은 소리는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좀 더 큰 소리로 쫓으라고 멀리서 소리를 지르곤 했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겨울철에 마당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참새는 아이에게는 맛있는 간식거리로만 보였다. 아이는 마당 한 구석에 쌀겨나 좁쌀을 뿌리고 그 위에 끈으로 묶은 작대기를 대소쿠리에 받치고는 참새가 날아오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참새가 대소쿠리 밑으로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을 때 작대기를 묶은 끈을 당기면 참새는 여지없이 갇힐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참새들이 소쿠리 밑으로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고는 했지만 참새는 언제나 아이 손보다 빨랐다.  

   참새는 초가지붕 처마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키우고 잠을 잤다. 참새가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처마 끝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가면 쉽게 참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새 집에 플레시를 비추면 눈이 부신 참새는 날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참새 집은 비어 있기 일쑤였고 어쩌다 잠을 자던 참새도 플레시를 비추기 무섭게 날아서 도망을 쳤다. 또래들 넷이서 운 좋게 처마 밑 둥지에서 잠을 자던 참새를 한 마리 잡은 적이 있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불을 피워 구운 참새는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 작은 참새를 네 명이서 나누어 먹으면서도 참새에게 미안함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밥을 주는데도 이놈들은 고마워하지도 경계심을 풀지도 않는다. 쌀을 뿌려주어도 아예 쌀에는 관심도 없는 듯 재재거리고 나뭇가지를 폴짝폴짝 뛰어 다니기만 한다. 아무런 위협을 하지 않아도 휭하니 날아 가 버리는 놈들도 있다. 예전 자기네 조상을 잡아먹은 낌새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잠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쌀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고 놈들 역시 한 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녀석들의 목적은 역시 아침밥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밥을 준지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녀석들이 경계심을 꽤 푸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나가도 날아가지 않고 나뭇가지나 담벼락에  앉아 있는 녀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마당에 쌀을 뿌려놓고 현관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아도 부지런히 쌀을 쪼아 먹는 녀석들까지 있게 되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이들 참새들은 밤새 어디서 고단한 몸을 쉬는 것일까? 작은 몸을 누이고 쉴 집을 지을 초가지붕은 넓은 세상 어디에도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길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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