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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하늘 Oct 25. 2021

감나무 그리고 할아버지

감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생각나는 사람.


나는 유독 감나무에 감이 빠알게 질 때면
가을을 타곤 한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텅 빈 것 같고,

 막연하게 무언가 그립다.


 더욱이 높은 가을 하늘과 몇 닢 남아 있지 않은 채 감을 겨우겨우 지켜내고 있는 감나무가 함께 눈에 들어올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어찌 보면 포근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쓸쓸하기도 한 기분.


 “왜 일까?”


 며칠 전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또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드라이브 길은 청도였기 때문에 감나무는 흔했다. 유난히 이 계절에는 드라이브 길에 주황빛 동그란 붉은 점들이 많다.

 그렇게 그 풍경들을 내 눈에 담으며 한 참을 차를 타며 이동하는데 내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Down by the sally garden~.”


 임형주 님의 Sally garden 1집 수록곡이었다.

우리집 뒷마당에는 감나무가 있다. 어머님께서 따 놓으신 것인지 문 앞에 감이 곱게 몇 알 있기에 냉큼 집어 와서 잘라보았다.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에 임형주 님이 1집을 냈었다. 나는 그 CD를 CD플레이어에 넣어서 할아버지 댁에 가면서 듣곤 했었다.

 하루는 내가 대청 마루에 다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영어로 노래를 흥얼거리자, 밭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께서 장난스럽게

 “ How do you do?” 하고 서툰 영어를 구사하시면서 악수를 청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이렇게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시고 시대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셨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할아버지 댁은 당시에 기와집에 흙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바쁜 부모님의 손을 떠나 50일이 될 즈음에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 7살이 될 때까지 조부모님 손에서 자랐다.

 그곳은 할아버지 댁이 아니라 그냥 “우리 집”이었다.

 가을이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집 안의 감나무에서 감을 따 주시곤 하셨다. 단감과 홍시를 따 오셔서 홍시는 할머니께서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시곤 하셨다.




 가을이 되면 묘한 기분이 든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맘 때 할아버지께서 따다 주신 감, 할아버지 댁 대문 옆의 감나무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 온다.


 그런데 내가 21살이던 무렵 이 맘 때,

 나는 갑작스럽게 할아버지를 잃었다.


 ‘보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

 아무도 내 편이 아닐 때 내 편이 되어 주시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나를 이해해 주시던.

 동네에서 소문나게 강인하신 분이셨지만 도시로, 부모 품으로 돌아간 손녀가 보고 싶어 수화기 넘어 그리움에 눈물 삼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시던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10년이 훨씬 더 더 지났지만

 매 년 이맘때가 되면 내 마음이 할아버지 기일이 가까워졌음을 기억한다.


 자박자박 낙엽 소리가 들리고

 익은 벼를 베어 내 볏단을 쌓아 놓은 것이 보이고

 시골 부뚜막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해 질 녘 돌아가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 그 때의 우리 집이 못내 그립다.


우리집 뒷마당, 어느 날 아침 새소리와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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