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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Nov 23. 2021

조카와 첫 부산 여행에서 만난 서울역 사람들

[조금은 불편한 진실]

조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됐을까, 겨울방학 때 부모님 없이 이모와 떠나는 첫 여행을 준비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조카를 위해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린다는 부산으로 정했다. 동행자가 있는 여행을 떠날 때는 일정을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아직 어린 조카라도 여행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어디 가보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을 준다. 떠나기 전에도 다가오는 여행의 설렘이 있는데 그걸 어렸을 때부터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일산에서 이른 아침, 광역버스 1000번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으로 가려면 그때는 횡단보도가 없어 지하도를 건너야 했다. 조카와 손잡고 가는데, 그때 지하도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더 많은 노숙자들이 있었다. 새벽길에 조카가 길거리에 자리 펴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모, 저 사람들 뭐야?"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바로 조카 손을 접으며 얘기했다. "이모가 이따 얘기해줄게, 일단 빨리 지나가자" 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하도를 올라왔다.


항상 여행을 다니면 아빠 차를 타고 가니 기차 타서 신난다고 서둘러 도착했는데 첫 만남이 노숙자라니 여행 일정이 처음부터 삐걱됐다.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내려가 기다리는데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노숙자에 대해 또 물어봐 얘기해줬다. 저분들은 지금 사정이 있어 집에 못 들어가고 방황하고 있는 거라고, 물론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들어가실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명해줬다.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한다. 처음 본 광경에 많이 놀랐을 텐데 어른인 나로서 참 부끄러웠다. 이 사회적인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역 근처를 갈 때마다 나조차도 피해 다니는데, 아직도 해결이 되질 않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생일 기념으로 떠난 여행은 크리스마스 불빛이 가득한 남포동에 가서 분수 쇼도 보고 용두산 공원에 있는 부산타워도 방문해 화려하게 빛나는 야경도 감상했다. 부산여행 가면 용두산은 필수 코스였는데 타워는 처음이었다. 전망이 이렇게 좋은지 알았다면 올 때마다 왔을 텐데 추천하고 싶은 장소 추가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조카와 의자를 사수하며 오랫동안 앉아 즐겼다. 역시 여행을 즐길 줄 안다. 조카와의 첫 여행은 바쁘지 않게 천천히 다녔다. 걷기도 하고 바다에 앉아 있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조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연필로 열심히 뭔가를 그리더니 보여줬다. 부산에서 본 것도 그렸지만 서울역에서 본 그 모습도 있다. 글로 이야기까지 썼다. 내가 나지막하게 얘기한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서술하고 있다. '이모, 저 사람들 뭐야? 이모가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 그림을 보고 희한하지만 각인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니 잘 그렸다고 칭찬도 할 수도 없었다. 조카한테 다시 얘기했다. 그건 잊으라고, 사회의 어두운 면이 어렸을 때 인식되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자라 본인 판단이 생긴다면 막지 않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좋은 것만 가득 담아가기에도 모자란데 마음씨 고운 조카가 아무래도 서울역에 대한 첫 기억이 강하게 남게 됐다.






여행은 '성장'이라 생각한다. 여행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듯 한 곳에서만 있다 보면 생각은 좁아지고 멈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 길을 걷다 보면 궁금함이 생겨 이곳저곳을 가기도 하고 상상을 하며 잠자던 욕구가 오르기도 한다. 꾸미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뒤를 돌아보면 내가 본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기에 나는 앞을 걷다, 뒤를 돌아다본다. 그게 바로 여행이다. 앞만 있지 않고 옆도, 뒤도 있는 나의 인생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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