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
친한 동생이 커다란 생화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얼른 생화를 받아 들고
"이게 뭐야~ 이런 걸 왜 해~"
멋없는 말이 먼저 나갔다.
"언니도 참 마음 표현을 잘 못해~"
라며 동생이 방긋 웃으며 본인의 팔을 주물렀다. 무거운 생화 바구니를 차도 없는 동생이 어떻게 들고 왔을지 생생하게 그려지니 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리고 예쁘고 화려한 꽃은 식탁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도 꽤 오래 버티고 있으며 남편과 나의 식사시간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다.
"00 씨가 이 큰걸 어떻게 들고 온 거야?"
"그러니까, 자기 몸만 한 걸 들고 왔어..."
"시드는 게 아깝다 사진 찍어놔야지"
"최대한 오래 잘 관리해 주고 오래 봐야지"
남편의 시드는 게 아깝다는 말이 이상하게 씁쓸하게 들렸다.
그렇게 식탁 중앙에 자리 잡은 꽃바구니는 처음의 생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나 같네..."
별안간 감성이 파도처럼 덮치는 날이었다.
20대 때, 나는 내가 무척이나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나름 곧 잘 일들을 해왔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서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실감했다. 남들과 비교하게 될수록 작아지는 내가 미웠고, 열심히 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화가 났다. 그렇게 나의 의지로만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 시기를 격렬하게 보내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인정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인정했지만 지금도 울컥하고 나오는 감정에 치일 때도 있다.
임신을 하고 보니, 정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력감이 하루를 지배할 때도 많다. 20대 때 그 정신, 나만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라는 불도저급 추진력은 어느새 사라지고, 집 안에 틀어박혀 안정감을 추구하며, 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일주일에 절반이다. 누워있으면서도 이 성미 급한 성질은 나를 재촉한다.
"이러고만 있을 거야? 임신은 너만 했어?"
누워만 있어도 대견하다 칭찬받는 임산부가 스스로를 자학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 글도 쓰고, 공연도 올려야 되고, 지원사업도 내야 하고, 연기영상도 만들어야 되고..."
그러다 문득, 식탁 위 선물 받은 꽃바구니가 보였다. 점점 시들어가는 꽃.
마음이 편해졌다. 꽃을 보니 시들어가는 것에 대한 집중보다 이제 꽃이 시들어갈 시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들어가는 꽃은 묘하게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한창 생기가 넘칠 시기를 지나 이제는 안정적으로 시들어가는 꽃. 생각해 보면 난 나에게 주어진 몫을 행복이라 이름 붙이기 힘들었다. 오히려 주어진 몫을 보며 더 큰 욕심을 냈었다. 시들고 있는 시기에 다시 생기를 원했던 것이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
결혼을 하고 우리의 가정이 생기고, 양가 가정이 화목해지고, 아이가 생기고 나라는 존재가 점점 희미해진다. 20대 때 나만 생각하던 시기에서 이제는 나보다 남편을, 나보다 아기를, 나보다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한 생명이 나의 뱃속에서 자라는 완벽한 신비와 경이로움을 겪는 시기.
나의 꽃이 시들어 너를 꽃으로 만드는 지금.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나의 시기인 지금은 내가 빛나는 때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빛나는 때보다 행복한 시간임은 확실하다. 빛날수록 욕심이 커지고, 만족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빛을 다른 쪽으로 옮기면 그 빛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 비로소 모든 것이 더 환하게 보인다. 시들어가는 꽃은 시들 때가 되어 시들어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나 또한 그 자연 안에 있다.
아직은 창창한 나이에 무슨 시들어가는 것에 지금을 비유하나 싶기도 하지만 식탁에 놓인 꽃바구니가 말한다.
"넌 아주 멋지게 시들고 있어"
그래. 지금을 즐거워하자. 나의 지금을 사랑하자.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