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0주 차 : 이해보다 큰 사랑

사랑은 이해를 뛰어넘는다.

by 이유진

"아빠 올 때 꽃 사 와줘. 알겠지?"

카톡에 1이 없어지고 아빠는 답이 없었다.

"응? 응? 응??"

"알았어요~"

막내딸에 보챔에 아빠의 답장이 왔다.


아빠가 드디어 이사한 신혼집에 첫 방문을 하는 날이다. 요리에 취미가 있는 남편은 장인어른께 대접할 요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퇴근을 했고, 오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요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상적인 결혼이 바로 이거지...라는 참 신혼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핸드폰이 울리고 파파라고 저장된 아빠의 번호가 떴다.


"아빠 도착했다. 근데 너희 동이 맨 끝 동이야?"

"응. 아빠 내가 내려갈게"

"뭘 내려와~ 아빠가 올라갈게"


막내딸은 원래 아빠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아빠가 보였다. 아빠 손에는 사과 한 봉지와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꽃이다~"

내가 사 오라고 했으면서 능청스럽게 연기를 했다.

"아빠 고마워~"

집에 들어가자마자 꽃을 정리해 화병에 꽂고, 식탁에 두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꽃이 함께 자리했다.

"이거 봐라. 아빠가 꽃 사 왔다." 능청스레 남편에게 자랑하듯 말을 했다.

"오. 장인어른. " 리액션 좋은 사위는 아빠에게 모범적인 리액션을 보여주었고

"아빠가 뭐 꽃집에서 꽃을 사본 적이 있어야지. 가서 빨간 장미 좀 주세요. 했다가 요새 누가 빨간 장미를 사느냐고 아줌마한테 욕먹고 하하"

아빠는 민망하듯 웃으며 한바탕 이야기를 쏟아냈다. 한참 이야기가 끝나고 아빠가 내 배에 손을 올렸다. 아직은 조금밖에 나오지 않은 이 배에 아기가 있다니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며 잘 자라고 있는 거겠지? 라며 아빠를 향해 어리광을 부렸다. 아빠는 배에 손을 떼며

"잘 자라고 있구먼" 시원스럽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아빠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다. 언니네서 모이는 규모가 큰 왁자지껄 가족모임과는 다른 아빠, 남편 그리고 나 세 식구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오붓한 시간이었다. 아니 뱃속의 아가가까지 넷.


어느덧 과일까지 먹고 나니 금방 9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빠 가야겠다. 내일 일정이 있어."

절대 딸들 집에서는 안 자고 가는 아빠는 과일을 다 먹고 좀 더 앉아있다가 가겠다고 일어섰다.

"아버지 자고 가시죠." 사위가 다정스레 말을 건넸다. "우리 아빠는 절대 안 잔다니까!"

나는 웃으며 아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 다음에!"

아빠는 또 시원하게 말하고는 차 키를 챙겨 신발을

신었다.

"아빠 도착해서 연락해."

"응"

주차되어 있는 아빠의 차까지 배웅을 나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와 아빠가 사 온 꽃다발을 한참을 보았다. 문득 난 왜 그동안 아빠한테 꽃을 사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긴 세월 동안 엄마를 잃고 나는 한동안 아빠를 원망했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아득바득 버텨가며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에게 왜 우리 아빠는 힘들지 않아?라는 말 한마디도 안 해줄까?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한다는 나에게 결혼 준비는 어떻게 하려고? 아니면 아빠가 뭐 도와줄 거 없어?라는 말 한마디가 없을까? 왜 우리 아빠는 나의 힘듦을 나의 애씀을 바라봐주지 않는 걸까?라는 원망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이해하려 또 애썼다. 아빠가 힘드니까... 아빠가 일이 좀 잘 안되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그 이해를 왜 나만해야 돼?로 결국 이상하게 매듭이 지어지긴 했지만 매번 이해하려는 건 나라는 생각에 억울함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동안 말을 안 했었구나...라는 아주 단순한 답이 머릿속에 스쳤다. 아빠 나 힘들어. 아빠 나 학비가 부족해. 아빠 나 일에 너무 치여. 이런 말들을 삼키고 나는 항상 아빠한테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빠를 닮았다.


"아빠 임산부 자리를 안 비켜줘! 사람들이!"

"자리를 왜 안 비켜줘? 특히 아줌마들이 그러지?"

"응!"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생선"

"아빠가 제주도 갈 때 갈치랑 옥돔 사서 보낼게"

"아싸"


임신을 한 후의 특권이라면 아빠에게 더 많은 응석과 어리광과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사랑이 담긴 문장으로 답한다. 아빠는 날 이해하려 하지 않고 더 큰 사랑으로 날 안아주고 있었다.

사랑은 이해보다 크다. 그러니 누구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사랑하려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자식에게 이럴 수 있을까? 아빠의 사랑이 이제야 명확히 보이는 걸 보니, 임신하고 철이 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맙다. 아가야~

철없는 막내딸을 이렇게 철들게 해 줘서

엄마도 배운 대로 너에게 큰 사랑을 줄게.

그건 할아버지가 너에게 주신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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