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마무리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며칠 전 아침이었다. 전날 마트에서 쇼핑한 물건 중에 환불해야 할 것이 있어 아이 등원준비를 시키고 아이와 함께 나도 신랑 차에 올라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신랑은 나를 마트에 내려주었다. 환불할 물건을 들고 차에서 내려 마트로 향했다. 항상 사람이 북적이는 오후시간이나 주말에만 와봤지 이렇게 아침시간은 처음인지라 입구부터 한산한 마트가 순간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님들은 없고 직원들만 분주해 보였다. 나는 고객만족센터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항상 북적이던 고객만족센터에도 카운터에 직원 두 명을 제외하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역시, 오전에 일찍 오니 좋구나.' 생각하며 나는 직원에게 어제 산 물건을 환불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나를 보더니 아직 오픈 시간이 안 됐으니 오픈 시간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엥? 아직 오픈을 안 했다고?' 아침에 일어나 아이 아침 준비시켜 어린이집까지 등원시키고 왔는데도 오픈 시간이 안 됐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 시계를 보니 9시 50분이었다.
아, 한국 마트는 10시에 문을 열었지..
생각해 보니 24시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집 근처에 있는 마트도 10시에 문을 열었다. 작년 즈음엔가 아이를 등원시키고 동네를 30분 즈음 걷고 들어가는 길에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들렀는데도 문을 열지 않아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생각이 났다.
늦게 문을 여는 건 마트만이 아니다. 커피숍도 늦게 문을 연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오픈 시간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보통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은 9시가 넘어서야 오픈을 했다. 아침에 아이 등원시키고 오는 길에 있는 동네 카페는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커피숍뿐 아니라 대부분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9시가 넘어 오픈하는 병원도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대형마트가 아침 7시면 오픈을 한다. 한국도 분명 나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내 기억으로는 병원들이 8시에 오픈했던 기억이 있다.) 몇십 년 사이에 왜 모든 가게들의 오픈시간이 이렇게 늦어진 걸까?
잠들지 않는 한국의 밤 문화
한국은 밤이 화려하다. 아침에 늦게 문을 여는 만큼 저녁시간에 늦게 까지 오픈을 한다. 24시간은 제하더라도 마트, 음식점, 가게 등 보통 늦게까지 문을 열고, 요새는 병원도 늦게까지 야간진료를 하거나 24시간 운영하는 병원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시골이나 도시 외곽지역에 살지 않는 한 동네 집 앞에만 나가도 마트나 가게들이 늦게까지 문을 열기에 항상 불이 켜져 있어 상대적으로 편리하고 안전하다. 확실히 한국은 밤이 강한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녁시간에는 할 수 있는 게 많다. 아이 저녁먹이고 나서도 아웃렛이며, 커피숍이며, 쇼핑몰이며, 서점이며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 저녁을 먹고 나면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없어 긴 밤을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우리에게 가장 그리웠던 것이 어쩌면 이 한국의 밤문화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2년 전 한국에 다시 왔을 때 가장 신기하면서도 좋았던 것은 늦은 밤에도 불 꺼지지 않는 한국의 화려한 거리 그리고 그 거리를 마음껏 누비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했다. 그렇게 잠들지 않는 화려한 밤문화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사이 이른 아침의 문화가 점점 그 자리를 내어주며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24시간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이른 아침에는 간단히 허기를 채울 곳도, 장을 볼 곳도, 따뜻한 커피를 마실 곳을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말이다.
새벽 6시면 오픈하는 뉴질랜드 까페
늦게 시작하는 한국의 아침과 달리 뉴질랜드는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새벽 6시면 동네 베이커리 가게는 이미 문을 열고 갓 구운 빵 냄새와 갓 내린 커피향을 풍기며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들러 머핀하나와 갓 내린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늦어도 7시에는 거의 모든 까페들이 오픈을 한다. 대형마트도 마찬가지이다. 아침 7시면 문을 연다. 보통 아침 일찍 장을 보지는 않아 살면서도 마트가 몇 시에 문 여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인가 신랑을 회사에 데려다 줘야 할 일이 있어서 아침에 신랑을 드랍해주고 오는 길에 필요한 것이 있어 들렀는데 그 시간이 7시가 갓 넘은 시간이었는데 그 때 7시에 문을 여는 것을 알고 이른 오픈시간에 놀란 적이 있었다. 가게들이 일찍 오픈을 하는만큼 클로징 시간도 이르다. 보통 까페는 3시에서 4시사이면 마감준비를 하고 문을 닫는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늦게까지 하기도 하지만 보통의 로컬 까페들은 새벽 6시, 7시에 오픈하여 3시에서 4시 사이면 문을 닫는다. 뉴질랜드에 살면서는 로컬 커피의 맛이 훨씬 좋기 때문에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거의 가지는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맛있는 로컬 커피를 마시려면 오전시간과 점심시간까지만 가능하다. 까페 뿐만 아니라 다른 가게들도 비슷하다. 보통 5시에 6시 사이면 문을 닫는다. 저녁까지 문을 여는 곳은 식당이나 쇼핑몰에 불과하다. 가게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는 예외적인 회사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 많은 회사들이 9시부터 4시까지 근무를 한다. 그렇다보니 가족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는 저녁식사시간이 보통 6시 전으로 이르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한국에 비해 이른편이다. (뉴질랜드 아이들은 5시면 저녁을 먹고 8시면 잠자리에 든다.) 뉴질랜드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사는 나라다. 자연주의 나라 답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시간은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고, 선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분명 어느 곳이 나에게 더 맞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뉴질랜드의 아이들은 잠이 부족한 경우가 거의 없었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10분이 지났고, 나는 가져간 물건의 환불 처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 공원 옆에 있는 자그마한 동네 카페에서 갓 굽는 빵냄새와 뜨끈하게 갓 내린 뉴질랜드의 플랫화이트 향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