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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폭탄

추위와의 사투

by 해보름

눈으로 보고도 실내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의 추위라는 게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집안에서도 방밖을 나갈 땐 두껍게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는 말도 몸소 체감을 하고야 알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방밖에 나갈 때면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했다. 참으로 집인지 밖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외국 영화를 보면 저녁에 다이닝룸이나 거실에서 주인공들이 두꺼운 나이트가운을 입고 차를 마시거나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두꺼운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방에서 나오는 게 영화여서가 아니었다. 그게 외국 주택의 현실이었다.


'그래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까 적응해 나가야지.'




아침에 신랑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방에 들어와 해가 뜰 때까지 좀 더 침대에 누워있었다. 해가 방안 창문으로 들어와 따뜻해질 즈음 옷을 갈아입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털 슬리퍼를 신고 모든 장착을 하고 나서야 주방으로 향한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주방 히터를 켠다. 밤새 차가워져 있는 냉기가 따뜻해지려면 시간이 꽤나 걸린다. 시간이 지나도 타일바닥인 주방이 내 생각만큼 훈훈해지지는 않는다. 한기만 어느 정도 가실정도이다. 물을 끓여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몸을 녹인 후, 간단히 아침을 준비해 먹는다. 그리고는 히터를 가지고 거실로 와서 이제 거실을 데운다. 그동안 또 한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집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다. 한겨울 히터 하나로는 훈기가 가시지 않을 때 땔감나무를 사서 신랑이 벽난로에 불을 붙여주었다. 나름 분위기도 있고 좋았다. 그렇지만 보기와는 달리 훈기를 유지하려면 꽤 많은 장작을 떼야했고 그 장작 또한 매일같이 때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에 정말 추울 때 한 번씩만 벽난로에 불을 붙이곤 했다.


거실에 있다 방에 가던가 방에 있다 거실로 갈 때 있던 곳의 히터를 꺼두어야 하는데 히터를 끄면 다시 냉골이 되다 보니 나는 약하게 히터를 켜두곤 했다. 그리고 저녁에 요리를 할 때는 방에 있는 히터를 가져다 거실에 틀어두고 주방히터를 틀었다. 그래야 좀 훈기가 돌았다. 그렇게 지낸 지 한 달여쯤 지났을까...


신랑이 퇴근하고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로 날 불렀다.


" 도대체 집에서 히터를 얼마나 쓴 거야? 얼마나 썼길래 전기세가 400불이 넘게 나와?"


결혼하고 신랑이 이렇게 큰소리를 낸 것이 처음이었다. 순간 놀라고 어안이 벙벙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 얼마나 라니? 집에 있으면 추우니까 틀고 있었지."

" 여기저기 다 틀고 있는 거야? 있는 곳에만 켜야지."


사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는 400불이라는 금액에 대한 감도 없었다. 겨울이니 난방비가 그 정도는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국도 겨울에는 난방비가 좀 더 나오지 않는가? 왜 그렇게 유난인가 싶고 서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랑은 남자 셋, 넷이 살 때도 전기료가 100불 정도밖에 안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오고 나서 전기료가 4배가 뛰니 신랑입장에서는 놀랄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신랑포함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들은 아침이면 나가 저녁에 들어오니 히터를 사용하는 시간은 저녁이랑 잠자는 새벽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하루종일 집에 있다 보니 하루종일 히터를 켜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전기료가 많이 나온 것이다. 어쨌거나 이곳의 추위에 이미 익숙한 신랑은 추워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나를 이해 못 해주는 신랑이 서운했다.


아직 신랑 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신랑하나 보고 의지하고 지내고 있는데 신랑마저 나를 이해해주지 않으니 난 한겨울 얼음장처럼 마음이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아, 이게 외국살이구나. 집도 설고, 물도 설고, 말도 설고 모든 게 다 설다는 외국살이..'


사실 그것도 그렇지만 아직 신랑 이외에 맘 붙일 곳이 없는 게 가장 서러웠다. 맘 맞는 친구에게 서러운 거 다 털어놓고 싶은 그런 겨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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