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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느껴지는 다른 남자의 시선

내 집인데 내 집 같지 않은 기분

by 해보름

신혼집에 들어와 산지 며칠 좀 지났을까 같이 살던 플랫메이트 분 중 한 분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게 되어 집을 나가게 되셨고 그러면서 다른 플랫메이트를 소개해 주셨다. 보통 신랑은 플랫메이트를 들일 때 얼굴을 한번 보고 같이 살아도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인지 보는데 이번에는 지내시던 분이 소개해준 사람이니 크게 걱정 안 하고 그분을 플랫메이트로 들이기로 했다. 오늘 와서 잠깐 인사하고 간단한 짐을 두고 며칠 후 들어오기로 했단다. 리고 그는 홍콩인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현관문 앞에서 저벅저벅 커다란 남자의 부츠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왜일까?(나름 홍콩사람은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는 나만의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그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눈도 컸다. 그리고 팔과 다리에 문신이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간단한 인사 후 신랑은 그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그의 방을 알려주었다. 그는 그의 방에서 짐을 풀고는 며칠 뒤 다시 남은 짐을 갖고 들어오겠다고 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난 신랑을 붙잡아 말했다.

" 자기야, 그 사람 어때? 괜찮은 거 같아? 뭐 하는 사람이래? 그 사람 팔다리에 문신 봤어?"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선 안되지만 나는 생각보다 강한 그의 인상에 그가 과연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신랑에게 폭풍 질문을 했다. 실 신랑이랑 같이 지내기는 하지만 이 집에 여자는 나 한 명뿐이었고 신랑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나는 혼자였기에 아무래도 그의 첫인상에 나는 꽤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신랑은 나의 생각과는 다른 듯했다. 내보지도 않고 어떻게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냐며, 전 플랫메이트가 괜찮다고 소개줬으니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며칠뒤 우리의 새 플랫메이트가 되었다. 그는 빌더 겸 도로일을 하는 로드워커였다. 그래서 이른 새벽이면 일을 나가 오후 2시가 조금 넘으면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잠깐 또 나갔다가 저녁때쯤 들어왔다.


그가 점심이면 집에 들어오다 보니 자연히 거실과 주방에서의 나의 자유시간도 줄어들었다. 굳이 신랑이 없는 집에서 그와 부딪히는 걸 피하고 싶었던 나는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도 그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주방에서 간식, 먹을 것 등등을 챙겨 방으로 들어오곤 했다. 어느 날은 점심에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차소리가 나서 보니 그가 집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후다닥 정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도로일을 하다 보니 그날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일찍 들어오곤 했다. 뭔가 우리 집이지만 우리 집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플랫 살면 이런 느낌이구나? 전에 어학연수할 때는 다 내 또래의 한국여자친구들이어서 같이 한 집에 살아도 편했었는데 지금은 다른 성에 아직 친하지도 않다 보니 그냥 뭔가가 다 불편했다.(사실 나만 그랬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신랑 퇴근시간에 맞춰 나는 여느 때처럼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전형적인 뉴질랜드 스타일의 집으로 한국처럼 방, 거실, 부엌이 트여있는 게 아니라 각각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거실과 주방에도 문 있어 각각의 공간이 독립적인 개별공간으로 되어있었다. 주방 음식 준비하는 곳 뒤로 복도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요리하는 동안 내 뒤에서 뭔가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신랑이 일찍 온 건가 해서 뒤를 돌아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 홍콩인 플랫메이트가 문에 서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웃어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왜 거기에 서서 그러고 있느냐고? 그는 저녁준비를 하러 주방에 들어오려는데 내가 요리를 하고 있어서 문 앞에 서서 오늘 저녁 뭐 먹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주방이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요리하기에는 복잡해서 나름 한 명이 요리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차례를 기다렸다가 주방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그가 뒤에서 내가 요리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여러 명이 사는 우리 집에선 당연한 거였다. 근데 난 왜 그렇게 놀란 걸까? 그건 그에 대한 한 오해와 선입견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는 타투가 마오리 전통문화중 하나로 마오리 인들뿐 아니라 이민자 중에도 뉴질랜드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몸에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여러 해 살아보고 나서 알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문신은 뭔가 무서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고 있었다.


사실 그는 강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절했다. 항상 집에 오면 오늘 하루 어땠는지 나의 안부를 물었고 내가 요리를 하거나 하면 그건 어떤 한국음식이냐면서 내가 하는 요리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라면을 좋아해 하루 매 1끼는 꼭 한국라면을 끓여 먹었다. 이렇게 조금 지나면서 서로를 알아가니 처음만큼 그에 대해 강한 인상은 조금씩 누그러지게 되었고 그에 대한 나름의 공포감(?)도 많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신혼인데 내 뒤에 있는 남자가 내 신랑이 아니라 다른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는 건 무언가 너무 신혼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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