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위해 회사에 3주간 휴가를 내고 온 신랑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결혼준비에 양가친척들과의 만남, 웨딩촬영, 본식까지 모든 걸 소화하느라 힘들었는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30여 년 넘게 살던 조국, 가족,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데 잠이 올까? 내 머릿속은 새로운 곳에서의 결혼 생활에 대한 설렘, 걱정, 기대의 감정들로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11시간 반의 비행 후 나는 그를 만나러 처음 뉴질랜드땅에 온 지 4개월 만에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다시 뉴질랜드 땅에 도착했다.
두둥~ 인생 2막의 시작!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그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6월 중반, 남반구에 위치하여 계절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이곳은 겨울 초입이었다. 찬바람에 코끝이 찡한 게 상쾌했다. 그리고 올 때마다 느껴지는 뉴질랜드 특유의 공기의 냄새가 느껴졌다. 찬바람과 섞인 맑은 자연의 냄새랄까?
'이젠 매일 이 공기를 맡으며 살게 되겠지?'
그곳의 공기마저도 날 설레게 했다. 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그는 익숙한 길을 운전하는 듯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였고 나는 항공사에 근무하며 비행으로 온 것까지 합치면 이미 족히 다섯 번은 더 왔을 이곳의 모든 풍경들이 마치 처음 온 듯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보였다.
' 안녕, 나무들아~ 안녕 집들아~ 잘 있었니? 나 이곳에 이민 왔어. 반가워~!'
혼자 창밖의 풍경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이제 내가 살 곳의 모든 것들에 인사를 했다. 공항에서 20분 남짓 달려 오클랜드 서쪽에 위치한 그의 집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짐을 내려 집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오전시간이라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가 쓰는 방에 나의 짐을 풀고 옆에 있는 작은 방에 나의 옷가지들을 풀었다. 그의 집은 방이 4개에 화장실이 2개인 4 베드 하우스였다. 그중 화장실이 딸린 큰 마스터룸과 그와 붙어있는 작은 방을 그가 쓰고 있었고, 나머지 2개의 방은 2명의 플랫메이트들이 각각 하나씩 사용하고 있었다. 거실과 주방은 플랫메이트들과 같이 셰어 하며 지냈다. 이제는 그가 쓰고 있는 두 방중 화장실이 딸린 큰 방이 우리가 쓰게 될 신혼방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난 그가 다른 사람들(남자들)과 지내고 있는 집에 들어와 신랑포함 세 명의 남자와 한 집에 살게 된 것이다. 사실 결혼 전에 그를 보러 왔을 때 그의 집에 와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우리가 결혼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그가 다른 플랫메이트들과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뉴질랜드 어학연수 시절 친구 2명과 같이 한 아파트에서 셰어 하며 지냈었다.
뉴질랜드는 주거형태의 비중에서 주택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다음이 타운하우스, 아파트순이다. 아파트는 주로 유학생이 많이 사는 시티 중심가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2,3층짜리 타운하우스들도 많이 지어지고 있지만 역시나 뉴질랜드 전체로 보자면 주택 즉 하우스형태의 집이 가장 많다. 그리고 일반 주택은 보통 방 2개짜리부터 있다 보니 혼자 지내는 싱글들이나 학생들은 보통 이렇게 방 3,4개짜리 집에서 플랫메이트들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다.혼자 외롭지 않고 렌트비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이롭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플랫메이트들과 함께 사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결혼하면 당연히 여기 들어와서 사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크게 의문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생판 모르는 남들과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신혼에..
우선 그날밤 신랑은 플랫메이트분들에게 정식으로 나를 소개해 주었다. 두 명 다 한국분들이었고 모두 뉴질랜드 영주권자로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들 인상이 좋아 보였고 일을 하니 다행인 건(?)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낮동안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분들이다 보니 신혼인 우리를 배려해 주신건지 공동구역인 주방이나 거실에는 필요할 때 이외에는 잘 안 나오고 방에서만 많이 지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랑과 내가 쓰는 방에 샤워부스가 딸린 화장실이 있어서 우리는 화장실은 셰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내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얼마 후 새로운 플랫메이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