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출장과 야근,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은 점점 나뿐 아니라 신랑의 숨통도 조여왔다. 건강한 사람도 몇 달만 일하면 과로로 몸 어딘가가 탈이 날 강도의 일이었다. 신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잠도 별로 없어서 하루에 4,5시간만 자고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피곤을 호소하고 핼쑥하게 말라갔으며, 코로나 때 제대로 쉬지도 못해서인지 후유증으로 기침도 6개월 이상이나 오래가 힘들어했다. 뭐라도 보탬이 되고자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구해 일주일에 단 몇 번이라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내가 풀타임으로 일을 해서 신랑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을 하는 곳으로 옮겼으면 했지만 아직 만 1세인 아이를 두고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회사에서 일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갈 때즈음 신랑은 회사 사정이 심상치 않다며 아무래도 월급을 제때에 받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가슴이 철컹 내려앉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왠지 예상되는 시나리오였다. 신랑이 종종 이야기하던 회사가 시스템적으로 잘 갖추어있지 않고, 직원이 100명이 넘는 회사에서 재무, 회계팀이 따로 없이 대표의 와이프가 부사장직으로 있으며 혼자서 직원들 월급과 모든 재정업무를 혼자 도맡아 한다는 이야기, 실장이라는 사람이 무언가 그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때마다 난 마음속으로 월급을 제때 주지 않으면 바로 그만두자라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랑이 월급을 제 때 못 받을 것 같다는 말 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이미 신랑을 제외한 팀장 이상의 직급자들은 월급을 몇 달째 받지 못하고 있었고, 직원들 중에도 몇 달째 월급을 못 받고 있는 직원들이 꽤 많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 아니, 어떻게?? "
" 아니, 어떻게 월급을 몇 달씩 못 받고 있는데 다들 그렇게 일하는 거야? 월급도 못 받으면서 그렇게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는 거야? "
몇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에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랑 말로는 직원들이 월급을 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회사에서는 지금 사정이 어려우니 돈이 들어오면 그때 주겠다고 했고 그것이 이미 몇 달이 늦어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신랑 팀의 부장님은 회사에서 일한 지 꽤 오래되신 분이시고, 정말 성실히 어떤 야근이나 출장에도 '노'없이 일하시는 분이신데 그분은 6개월이나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하셔서 적금을 깨고, 연세드신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다들 정말 대단하신 건지, 순수(?)하신 건지 나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니 내가 할 말은 단 하나였다.
" 신랑, 이 회사는 끝이야. 얼른 나와야 해."
나름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을 한 나의 경험과 촉, 그리고 나의 상식으로 이곳에 더 있으면 안 되었다. 다른 건 신랑 말마따다 다 참는다 해도 그건 직원들이 일하는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월급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일한 대가를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도 몇 달씩이나 주지 못하는 (못하는 인지, 않는 인지를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더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정말 한 두 번, 늦을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몇 달씩 그것도 거의 절반이 넘는 직원들이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이미 시스템적으로 이런 저런 문제가 많아 보였기에 그 간의 문제들이 이 월급문제로 정점을 찍게 된 것이었다.
여하튼 신랑에게 다음 날 회사 가서 최대한 월급은 늦지 않게 달라고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근데 무언가 느낌이 싸한 게 영 찝찝했다. 회사 대표가 직급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자로 연락이 왔다는데 문자내용을 보니 왠지 느낌이 바로 당장 전화해서 월급을 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듯했다. 그러나 신랑은 그렇게 하기는 뭔가가 불편한지, 내일 회사 가서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더 재촉해도 싸움만 날 것 같아 신랑을 믿고 하루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나 영 촉이 이상했다.
다음날 아침 신랑이 출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신랑의 전화였다. 신랑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 자기야, 대표 잠적한 것 같아."
몇 초간 멍 했다. 들어본즉은 회사에 나가보니 대표가 코로나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는 핑계이고 다들 잠적했다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가 봐도 주말에 회사에 문제가 생겼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 월급을 주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하고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나오지 않은 것을 정말 아파서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제야 신랑이 이야기했다. 그간 그래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대표를 믿었는데, 이제 보니 여기는 아닌 것 같다고, 내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침착해야 했고, 침착하자 했다. 신랑의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오히려 캄해졌다.
신랑은 주말에 대표한테 연락 왔을 때 바로 통화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액션을 취해야 했다. 신랑은 부사장을 찾아가서 아이가 어려 월급이 늦어지면 안 되니 꼭 달라는 말을 전하고 대표한테도 문자로 연락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연락 와서는 이렇게 월급을 받지 못해 그만둔 직원들이 꽤 많이 그만뒀다고 했다. 남아있는 직원들은 이미 몇 달 동안 못 받은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서 월급이 들어왔다. 아이가 있어서 그래도 신경 쓰고 챙겨준 거였는지 다른 직원들은 아직도 못 받은 직원들이 상당하다고 했다. 돈이 들어온 것에 대한 안도감과 다른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얼른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급함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서 올라왔다. 회사 분위기상 야근이고 뭐고 일도 급한 것만 대충 마무리하고 일찍 들어온 신랑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얼른 사직서 쓰자.' 이번에는 신랑도 바로 동의했다. 다음 날 신랑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그 달까지 마무리를 짓고 퇴사를 했다. 달력을 보니 12월이었다. 전 해 12월에 첫 출근했으니 신랑말대로 딱 1년은 채우고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신랑의 한국에서의 첫 직장이 일 년 만에 마무리 짓게 되었다. 신랑과 함께 뒤돌아보니 정말 하루하루 숨이 헉헉대는 스케줄에 우리에겐 2년, 3년과도 같은 1년이었다. 그러나 바쁘고 일이 많았던 만큼 전천후로 일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년의 경력이지만 그 사이 승진도 과장에서 차장, 부장으로 두 번이나 했고 (승진만 시켜줬지, 연봉조정은 처음 승진 때 이후엔 없었다..) 그러면서 커리어적으로 많은 것들을 쌓고 배울 수 있었기에 이곳에서의 경력으로 이 쪽 분야의 어떤 회사에 가더라도 전천후로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라면 절대 1년, 아니 6개월도 못 버티고 나왔을 근무환경의 회사에서 1년이란 시간을 버텨주고, 그 와중에서도 배운 점을 찾는 신랑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넘어 존경의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 신랑말대로 힘들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신랑에게 한국에서 필요한 많은 실무 업무들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시려고 이런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하자.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분명 신랑이 필요한 곳에서 더 잘 쓰이게 될 거야."
우리는 그래도 1년 동안 우리 가정에 월급을 준 회사에, 짧은 기간 힘들게 일하며 한국사회의 직장업무를 압축해서 배울 수 있었음에 그럼으로써 많은 경력들을 쌓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 참고로, 신랑이 다녔던 회사는 신랑이 그만둔 후로도 많은 직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한 채로 퇴사를 했고, 결국 회사는 파산을 하여 남아있었던 직원들도 돈을 받지 못한 채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