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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Dec 24. 2023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갈 수 없는 나라

빠른 치료 vs 자연주의 치유

 한국에서 30여 년을 살았던 나는 다른 나라의 병원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국의 병원이 좋고 나쁜 판단 없이 익숙할 대로 익숙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크게 아파 입원한 적은 없었으니 자잘하게 아프면 병원 가서 진료받고, 처방받은 약 먹고, 심하게 아프거나 쉴 여유가 없을 때는 빠른 처방으로 영양수액 한 대 맞고 오는 것이 누구나 그렇듯 한국 병원 방문의 루틴이었다. 이것이 엄청난 편리함이고 엄청나게 빠른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뉴질랜드에 가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갈 수 없는 나라


 그 첫 번째 시작은 뉴질랜드에 도착한 해에 처음 맞은 겨울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겨울이어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눈도 오지 않고 낮에는 해가 비치면 가을 정도의 날씨라고 들었던 터라 추위를 많이 타는 나였지만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웬걸~ 밖보다 실내가 더 추운 반전이 있을 줄이야.' 바닥난방이 되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히터를 틀고 있는 근방을 제외하곤 그냥 바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방 밖을 나갈 때면 옷에 외투까지 겹쳐 있어야 했고 집에서도 입김이 나오는 지경이었으니 나의 안도감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 결과 내 기억으론 평생 처음으로 코감기, 목감기, 두통, 오한, 발열 종합감기약에 쓰여있는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는 통증을 수반한 종합감기세트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챙겨 온 약들을 먹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갈 때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신랑에게 병원엘 좀 데려가 달라고 니 신랑은 뭘 감기로 병원에 가냐는 듯한 표정으로 시큰둥해했다. 여러 번 이야기하자 어쩔 수 없이 예약해 준 병원 날짜는 일주일이나 후였다. '엥? 난 이미 기 걸린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오늘 가면 안 돼?'라고 묻자, 여기는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당일에 갈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빨라야 2~3일 후 아니면 일주일에서 몇 주까지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황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1주일을 더 기다린 병원진료날 신랑이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짬을 내고 나와 병원에 가려하는데 회사에서 급한 상황이라 바로 와줘야 할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그렇게 일주일 기다린 병원 예약일을 놓쳐버렸다. 감기에 걸린 지 2주가 지나고 다른 날로 예약을 하려 하니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일주일을 더 기다려서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는 나에게 신랑이 말했다.


"그냥 약 먹어. 어차피 여긴 병원 가도 파나돌(해열진통제)밖에 안 줘. "

"뭐. 라. 고?"

"주사는 안 놔줘? 수액은?"


그런 건 없단다. 다른 질병도 주사랑 수액은 응급실이나 큰 병원에 가야 놔주지만 이런 감기 갖고는 병원에서 해주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단다. 사실 그때는 뉴질랜드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신랑말이 사실인가 의심스럽고 병원 데려가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몇 년 지나고 뉴질랜드 병원의 실상을 알고 보니 모든 게 다 이해가 갔다.


'뭐 이런 나라가 있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 가는 건 포기했다. 가도 해주는 것이 없다는 말에 일하는 신랑까지 나오라 해서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걸린 종합감기를 난생처음으로 병원 도움 없이 생으로 겪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올 때즈음이 되자 감기 증상도 같이 사라졌다. 혹독한 겨울, 혹독한 뉴질랜드에서의 신고식이었다.


 이렇듯 뉴질랜드에서는 병원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하기에 기본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당일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응급실에 가면 된다. 그러나 응급실에서도 급한 순서대로 환자를 받기에 웬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기본 5~6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신랑이 유학시절 술을 많이 먹고 탈수 및 온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술병이 와서 간신히 응급실엘 갔는데 응급실에서 7,8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기다리는 동안 나아져서 집에 돌아왔다는 웃픈 에피소드는 들을 때마다 '이 나라에선 아프면 안 되겠구나.'라는 다짐을 굳게 하게 된다.





 당일 진료 및 검사까지 받을 수 있는 나라


 얼마 전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말을 잘해 한국말로 영어를 가르치는 유명한 미국인 유투버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그분의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에 오셔서 한국 병원을 방문하여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한 놀라 하는 영상이었. 그 유투버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70년 가까이를 사셔서 처음 한국의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예약도 없이 바로 병원에 들어가 진료를 받고, 복잡한 서류절차 없이 바로 그날 필요한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결과도 당일날 의사에게 듣는 것이 믿기지 않아 했고 그렇게 진료와 검사를 받고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음에도 몇 만 원 밖에 나오지 않은 금액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뉴질랜드에서 산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믿기지 않을 경험이었다. 예약도 없이 바로 당일날 가서 진료를 받고, 필요한 검사도 추천서를 받아서 몇 주 기다려 다른 방사선 클리닉에 가서 받는 것이 아니라 같은 병원에서 바로 당일에 검사를 받고, 결과도 몇 주에 걸쳐 메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사에게 당일날 들을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해도 고작 몇 만 원, 100불도 들지 않는 비용이라니~ 한국인이에게는 그게 뭘? 하고 대수롭지 않을 그것들이 외국들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신세계 인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 사는 교민들은 한국으로 의료투어를 온다. 요즈음은 K의료라 하여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검진이나 치료, 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많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뉴질랜드에 사는 지인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어찌나 검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몇 개나 되는 여러 검사들이 하루 반나절만에 끝난 것과 검사가 끝난 후에 죽 쿠폰을 받아 죽으로 맛있는 식사까지 제대로 했다며 칭찬일색을 했다.



 

빠른 진료 vs 자연주의 치유


 빠른 진료, 자연주의 치유 각각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자연주의 치유의 가장 큰 장점은 면역력을 키울 수 있어 웬만한 병으로는 크게 아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큰 병인 경우 제 때 치료받지 못해 병을 더 키울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빠른 진료는 그 반대이다. 아플 때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큰 병도 바로 치료해 병을 조기에 잡을 수 있는 반면, 작은 병에도 자주 병원진료와 약에만 의존하다 보면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치유력, 자체면역력을 잃을 수 있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보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두 나라의 의료시스템을 겪어 보고 나니 한국의 빠른 진료와 선진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되고, 웬만한 병으로는 병원을 가지 않는 아니 가기 어려운 뉴질랜드에서 자연치유를 하며 식습관과 운동, 건강한 정신력으로 병을 미리 예방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게 된 것그곳에 가서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감사한 경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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