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삼거리 Dec 19. 2022

엉뚱한 물건들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들

 집에 있는 물건 중 제일 엉뚱한 것을 꼽으라면 우리는 '말린 개구리'가 있다. 수원 못골시장 구경을 갈 때마다 약재상 앞에 걸린 말린 개구리를 보고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무언가 부탁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도마뱀구이와 흡사하다며 재미있어하다가 결국은 하나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필요한 때가 오면 요긴하게 써먹을 테다. 비닐봉지에 쌓여 장난감 바구니 안에 들어가 있다. r은 눈에 보일 때마다 어서 치우라고 성화지만 간혹 그것을 꺼내 보는 일은, 그리고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순간이 된다.  


 r에게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꽃병이 있다. 이케아에 구경간 어느 날이었다.

 ' 이 꽃병 예쁘다, 이거 갖고 싶어. '

 ' 이게 갖고 싶어? 꽃병이? '

 ' 응!! '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본인이 두 팔로 안아야 들 수 있는 큰 꽃병을 자기 방에 가지게 되었다. 회색 빛 유리에 흰 붓질의 선들이 자유롭게 둘러있는 독특하면서 근사한 꽃병은 어색하게 오랜 시간 어린이의 방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고, 꽃병을 산 그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나는 볼 때마다 피식거렸다. 지금은 본래의 용도로 잘 사용하고 있다.

  

 j와 나의 물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지는 것이지만 r의 물건들은 즐거움과 우정, 헤아리는 마음들로 가득하다. 학교에서 혹은 친구들과의 생활 속 ‘자람’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은 냉정한 우리와 아—주 맞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버릴 수 없는 물건들도 있다.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물건 같지만 그것들이 마음에서 멀어지는 데는 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라고 생각하면 (어떤 때는 매우 냉정하다. 기준이 확실한 것일 테다.) 자기 방에 넣어 놓기는 애매하지만 돌보기 어렵거나,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장난스레 복도나 우리 방의 책장이나 책상 위에 슬그머니 놓고 간다. 그 물건들을 정리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지만 함께 지내고 돌보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다.


 지금 있는 것들을 보자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음료수 병에 넣어 만들어 온 수경 대나무 두 줄기, 중학교 때 수업시간에 만들어 온 화분, 과학 시간에 교재로 만들어 온 바퀴 달린 종이 펭귄, 나무 조각들로 튼튼하게 만든 책꽂이와 두량짜리 열차가 있다. 그리고 거북이 잔디인형도 오랫동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지만 여름휴가를 다녀왔더니 시들어 있었다.

 엊그제 j의 만년필 잉크병 뒤에 살짝 가려져 있던 노란 플라스틱 알껍질, 매우 자연스러웠다.

 사실 고등학생이 된  r의 요즘 책장과 책상은 책과 노트, 문제집 프린트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방심한 우리는 오랜만에 ' 아니 이거 뭐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를 외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겐 지나간 시간이 된 것 같지만, 학교에서 만드는 공작품들은 이렇게 집안 곳곳에 놓이고 함께 할 것이므로 질이 좋고 아름다우면 좋겠다. 잘 만들어진 것은 어울리는 자리를 잡고 살펴지기 마련이다.


 생각이 닿는 어딘가 쯤으로의 확장에 그 '엉뚱한 물건들'은 강한 힘을 가진다.

 

작가의 이전글 동태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