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삼거리 Jan 06. 2023

감나무

새들이 찾아온다.


 늦은 가을날 시골에서 보내주신 감을 더 익혀 먹으려고 창 밖 방범창 틀 위에 하얀 화선지를 깔고 놓아두었었다. 붉은 홍시가 되고 날이 추워져서 적당히 얼면 오늘같이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의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따뜻한 방으로 들여 가운데 칼집을 내고 두 손으로 반을 갈라 차갑고 말캉거리는 달콤함을 '아-ㅁ' 베어 물겠다.


 앞집 작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 두 어르신은 작년 가을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을 긴 막대기에 달린 채집망을 이용해서 잘 익은 것들을 골라 하나씩, 둘씩 지나가는 동네분들에게 나눠주셨다. 창문 밖으로 '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감이 아주 잘 익었습니다. ' 얘기 소리가 들렸다. 동네의 작은 이벤트로 지나가는 이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외출할 때도 어김없이 감을 주시겠다고 했지만 다른 분들 감을 따고 계셔서 다음에 받겠다고 했더니 그날 저녁에 작은 상자에 감을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다주셨다. 그 감나무에는 많은 새들이 온다. 산비둘기, 물까치, 지지배배 여기까지가 내가 구분하여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어째서인지 올해는 감이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새들은 찾아온다.


 어째서인지 새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새들이 찾아왔다.


 창밖에서 ‘새들이 퍼득거리네’ 하며 잠을 깨서 기분 탓인가 했는데,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은 새들은 방범창 창살 사이로 들어와 종종거리며 우리의 감을 먹고 있었다.


 제일 가에 놓인 감부터 먹는다. 이것저것 헤집어 놓지 않고 하나씩 둘씩 먹는다. 해가 있는 아침과 낮에 주로 다녀간다. 부리로 ‘찹’ 붙잡고 야무지게 먹는다. 대봉 10개를 추가로 배치했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살펴보다 눈이 마주치면 놀라 달아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슬쩍 보고는 나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그런데 이놈들이 보기만 하고도 맛감별을 하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본가에서 가져온 납작한 감 하나를 더 올려놨는데 먹지를 않고 있다. 아직 덜 익은 것인가. 맛없는 감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시골은 아닙니다. 서울특별시,





23.01.14.

 마지막 감은 어김없이 사라졌고, 멀찍이 나뭇가지에서 빈 공간을 바라본다던가 바닥을 부리로 쿡쿡 두두리는 새들의 압박에 대봉 여섯개를 더 구입함.

23.03.29.

 새들은 사과도 잘먹음.

 


작가의 이전글 엉뚱한 물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