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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an 25. 2024

그럴 때는 보통, 요리책

짧은 여행과 산책

 간혹 무언가 정리가 되지 않거나, 집중되지 않는 시간이 오래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걸 바꾸고 싶을 때 나는 요리책을 본다. 도서관의 요리책 코너로 가서 이것저것 뒤적여 보다가 마음에 드는 작고 가벼운 책을 하나 골라서 가방에 넣고, 산책을 하다가 카페에 앉아 책을 들여다본다. 요리 사진이 많은 책이나 혹은 글이 많은 책이나, 그 안에는 순서를 따라가는 요리법이나 재료를 잘 다루는 법은 꼭 들어가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그걸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그곳으로 집중이 된다. 모르는 재료나, 용어, 해보지 않은 것들이 있어도 상관없다, 혹은 휘리릭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새로운 자극이 된다.


 먹는 일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활동이다.

 요리 일은 모든 불을 다룬 것들의 활동이다.


 요리된 음식이라는 것은 멀리서부터 맛의 냄새로 다가오며 형태를 갖춘, 잘 차려진, 놓인 차림새로 눈에 담기고 ‘잘먹겠습니다!’ 한마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그것의 맛보기를 실행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대로의 채소, 과일부터 뽀얗게 익힌, 삶은 밥과 곡식, 다듬어져서 간 된 국과 반찬들, 한 그릇 뽐낸 요리와 오래 두고 숙성시킨, 삭힌 오랜 요리법 그리고 가공식품까지 차곡차곡, 두루두루 맛을 보았기 때문에  자세한 요리법은 알지 못해도 이 요리가 어디 즈음의 위치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샐러드의 맛, 구운 채소의 맛, 삶은 것, 볶은 것, 튀긴 것, 재운 것, 삭힌 것 그리고 통째의, 적당히 썰은, 채 썰은, 다진, 갈은의 정도도 구분할 수 있다. 지글지글 홀리는 소리와 향, 온기와 열기 그리고 웃음, 모든 것이 적당하게 소란스러운 기억들로 쉽게 책에 몰입되곤 한다. 요리를 관심 가지고 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물질로 만들어진 요리의 화학작용과 발효는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는 사실 같은 것이다. 다른 지역의 요리법이라면 새로운 재료의 비슷한 부분을 추측해 볼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 좋아하는 것과의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다. 그 지역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생겼을까 하는 문화도 접할 수 있고, 요리하는 사람 개인의 태도 역시 엿볼 수 있다. 사실 (이런 것은) 꼭 책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매체가 있고 직접 맛보는 방식도 있고, 여행은 모든 것을 포괄하니. 그래도, 집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혼자 마주한 요리책은 여유롭고 빈 틈 많은, 편안한 방식으로 조용하게 다가가는 여행으로의 한 걸음쯤이 될까. 한걸음 다시 옮기면 집으로 돌아와서 나의 일상이다. 사실 꼭 요리 아니어도 될 것이다. 요리, 식사라고 하는 것은, 다만 내가 생각한 것은 '매일의 활동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그중에서 하루에 세 번씩 꼭 일어나는 일, 식사라고 하는 것이 시작으로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 먹는 일에 만 머무르지 않고 어디든, 어떻게든 확장 가능하다는 것. 이점이 무척 매력적이다. 이건 사실 내가 굉장히 고군분투하던 시간을 지나고 뜸 들여진 시간에 시작된 사건이다, '이왕 할 거 잘해보자'에서 조금 철든 생각이다. 꼭 따라서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적당히 부담스럽지 않은 어느 지점에서의 커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면 내 식탁의 일에 바로 도움이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오감이 살짝 들뜬, 어떤 감정은 배제된 감각이 일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뜸 들이기’이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한 상차림에서 '잘 차려진' 기준은 어떤 것일까.


 ‘시의적절’이 우선되어야 하겠지. 먹는 사람의 상태를 살피는 일, 분위기, 환경, 그리고 모든 내가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한 스푼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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