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 부엌
오늘 서랍을 열고 봉투 집게 하나를 꺼내서 양상추 봉투를 집어 놓았는데, 원래 열개 세트 살 때 담겨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트레이 위에 집게가 세 개만 올려져 있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이걸 산지는 6개월 정도 되었는데 보통은 3-4개 정도만 비워져 있는 것이 다였다. 임무를 다하면 제자리에 다시 채워 넣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집게들이 부엌 구석으로 퍼저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 10년 넘게 쓰던 봉지 집게는 새로 산 것과 비슷한 형태의 파스텔 톤 플라스틱 스틱형으로 2개 있었는데, 몇 개 더 있으면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리저리 구경 다니다가 또렿한 색감이 마음에 든 열개 들이 한 세트를 구입했었다. 새 것 두 개는 마미네 딸려 보내고, 원래 있던 것에 8개를 더해서 그대로 열개를 쓰고 있다. 비닐까지 사가지고 온 그대로 서랍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갯수가 언제나 파악된다. 보통은 밀가루, 파뿌리 봉투가 잡히는데, 이것의 진가는 자주 손이 가는 과자, 빵을 보관할 때 발휘되었다. 그렇게 요긴하게 쓰고 그 도구에 익숙해졌는지 나는 여기저기 쉽게 일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햄버거 만드려고 어렵게 산 버거용 빵과 양상추, 청년 야채가게에서 과일가게로 다시 뻥튀기 가게로 바뀐 아저씨네 동그란 뻥튀기, 생선가게에서 산 국물용 큰 마른 멸치, 삼등분하고 남겨진 파뿌리, 김밥 싸고 남겨 사등분 해놓은 김, 요즘 자주 해먹은 칼국수 만들기 전용 밀가루를 7개의 봉투 집게가 책임지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제 저녁에 콩나물 국밥에 곁들여 먹은 김과 아침으로 먹은 크림치즈 바른 햄버거 빵이 소진되어서 두 개의 집게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면 5개가 채워진다. 늘 고정되어 있을 것 같은 밀가루 1개를 빼면 9개가 될 것이다. 밀가루가 떨어지면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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