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껍질 안에 노란 속살을 가진 녹두를 한주먹 잡아서, 가벼우면서 깊고 넓은 그릇에 담고 차가운 물을 쏴-아 틀면 매끈한 거품이 올라온다. 손을 저으며 투명해지는 껍질의 알갱이들과 물거품 사이를 오가다가 가만히 놓고 바라보았다. 손과 얼굴, 내 몸 속 구석구석을 돌며 바글거리면서 강인하고 단단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바스락거리는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줄 것만 같다. 봄의 풀들을 몇 번 맛보고 나니 흰 죽으로는 안 되겠다. 추운 겨울 맞은 때 붉은 갈색으로 숙성된 달달한 맛의 팥죽이 생각났다면 오늘은 짙게 여름을 기억하게 하는 풋풋한 맛의 녹두다. 불려 놓은 녹두를 같이 넣고 밥을 해서 죽을 끓였다, 녹두죽. 여름의 막바지에 햇빛을 잔뜩 머금다가 잎과 줄기의 틈에서 끝끝내 터저나오는 노란 꽃 아래에 얇고 길쭉한 녹두 주머니가 달린다. 짠-하고 대칭을 이루면서 쪼개지듯 나타나는 땅콩꽃의 짙-노랑 귀여움과는 다른 게 녹두 꽃은 꼭 그렇다. 누구 하나 울고 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