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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Aug 17. 2020

단순함

바게트 샌드위치

  

  여행을 갔을  일이다. 한참 차를 달리다가 무언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언덕에 멈춰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도로도 없는 곳에 우리만 서있었다. 신나게 차에 있던 버너를 꺼내,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 먹기 완벽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순조롭지가 않았다. 강한 바람 때문에 불이 약했고, 지대가 높아서인지 생각했던 것처럼 물이 끓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것들로 가림벽을 만들어보아도 잘되지 않았다. 데워진 물을 컵 하나에 부었다. 면은 설익었고 기대하던 맛이 아니었다. 셋이 그 하나를 나눠먹고 기운이 빠진 채 짐을 정리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식사 때가 많이 지나서 뭐라도 먹어야 했기에 출발하기 전 시내 마트에서 산 국적불명의 빵 봉지를 열었다.


 이 빵은 투명한 비닐봉지에 여러 개가 담겨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에 투박하고 밀도 있어 보이는 것으로, 사실 살 때 특별히 맛있어 보였던 게 아니고 '빵' 같은 것으로 살 수 있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아서 비상식량으로 사놓은 것이었다. 구운 것 같지는 않고 튀긴 듯한 느낌으로 단단했다. 손에 하나씩 쥐고 창밖을 보며 무심히 먹기 시작했다. 한 개를 거의 다 먹을 때쯤 알았다. ‘왠지 맛있다.’


  “한 개 더 줘봐.” 우리는 그제야 여유가 생겼다. 그 빵은 약간 퍽퍽한 편인데 그렇다고 바스러지는 타입은 아니고, 버터가 들어간 것 같진 않고 기름이 들어간 것 같은데 튀긴 것 같이 기름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묻어나지도 않고, 짜거나 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밀가루 맛이 많이 나는 것도 아닌 이상함이 있었다. 우리는 그제야 기운을 차리고 얘기 시작하면서 이건 '척박한 맛이다.'라고 했다. 그런 맛이었고, 그 순간 너무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차로 오랜 시간 이동할 때 하나씩 꺼내 먹었고, 없을 때는 아쉬워했다.


 촘촘한 감칠맛이 주는 긴장감 대신 단순하고 묵뚝뚝, 틈이 넓은 담백한 맛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전보다 조금은 더, 단순함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리적으로도 끊어지는 식감의 퍽퍽 담백한 맛이 생각나면 바게트 샌드위치를 해 먹는다.


 바게트를 하나 사서 3 등분하고 반을 가른 후 슬라이스 치즈와 햄을 3장씩 넣고 콜라와 먹는다. 버터를 추가하기도 한다.


* 고비로 가던 길, 어느 마을의 우체국에서 집으로 보낸 엽서의 우표. 서울까지는 영문으로 적고 집주소는 한글로 적었다. 귀여운 우표 한장이면 국제우편배송이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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