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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치에서 상추로

by 고양이삼거리

그대들, 3월의 눈보라 몰아치는 밭에서 뿌리를 내리며 씩씩하게 자랐습니다. 보랏빛 주름진 작은 잎 부르르 떨며 냉해를 피하고 차가운 4월의 대기와 햇살 속에서 초록으로 생기로운 활동을 시작하더니 구불거리는 손바닥 만한 잎사귀를 탄탄하게 키워냈습니다. 손을 뻗어 줄기를 겹쳐 감싸고 있는 잎 집을 꺾으며 가장자리부터 떼어냅니다. 잘린 곳에서 하얀 즙 맺혔습니다, 락투카리움. 오랜만의 텃밭 상추를 한 입 크기로 접어서 입에 넣으면 버터향 가득한 크로와상 마냥 겹겹이 얇은 육질 사이로 수분 가득하게 맑고 쌉싸레한 맛이 '와그삭' 생기롭게 5월의 식탁을 홀립니다. 한 번 수확하는 양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당연하게 쌈이지만 돌돌 말아 채 썰어서 고추장 비빈 밥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하고, 다른 채소, 과일을 같이 얹어서 샐러드로도 먹습니다.


아, 상추!


비가 오면 생각납니다.

물 주러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상추는 예전에 '부루'라는 순우리말로 불뤼기도 했다고 합니다. '상치'라고 부르기도 했고 표준어는 '상추'입니다. 어릴 적 상치, 상추 혼용해서 부르던 때가 생각나는데 요즘은 주변에서 상치라고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만, 부루도 그렇고 지역에 따라서 지금도 쓰인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에서 먹기 시작하고 그때가 신라시대라고 하니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다 싶은데 상치에서 상추로 자주 쓰는 말의 변화를 겪은 것은 조금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변화를 배우고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학생들입니다. 교과서에는 표준어를 싣고 개정된 것을 배우니까요. 이미 몇 해 전의 일이지만 시험기간, 한 밤에 저항할 수 없이 r이 내는 과학, 역사 퀴즈를 풀어야 했는데 그 졸음과 싸우던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다른 것들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래 표준어를 저에게 남겼습니다. 동사무소 -> 주민센터 같이 이 정도 흐름은 알고 있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 발음 표기에 가깝게 변경된 과학용어라고 합니다.


요오드 -> 아이오딘

아밀라아제 -> 아밀레이스


바뀐 말들은 모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상은 변화가 없는데 주변 관계들이 변했습니다. 직접 기른 텃밭 상추를 맛보고 상추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일을 생각해 보면, 나와의 관계가 한순간에 바뀌기도 합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상추 두장을 겹치고 큰 쌈을 만들어서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수밖에.


상추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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